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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Mar 22. 2024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예언

“아, 맞다! 이건 어때?”


한이 좋은 생각이 나기라도 한 듯 붕붕 날갯짓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날았다. 그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나와 포도 덩달아 날아올랐다. 


“무슨 좋은 수라도 있어?”

“심 말이야! 심!”

“시.. 시.. 심?”


심이라면…. 


“우리 동네 점쟁이? 그 아줌마가 여기서 왜 나와?”

“우리 엄마가 자주 만나시는 분인데 그분이 그렇게 앞 일을 잘 맞춘데.”

“그거랑. 우리의 문제와 무슨 상관이….”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포와 한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같은 생각인 거 맞지? 나는 뒷다리로 한을 걷어 차줄만큼 과격하게 흥분했다. 그 참에 한과 나는 한참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래! 가서 물어보자. 부엌에 가는 게 맞는지! 부엌에 가야 할 운명인지!!”

 “가.. 가자!”




심 아줌마네 집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핑크색 책이 꽂혀 있는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운영 중이었다. 거기엔 ‘예언자 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조악한 글자 모양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지만 그녀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차올랐다. 

그녀는 앉은 것도 아니고 나는 것도 아닌 기이한 자세로 기도 중인 듯했다. 날개는 바스러질 만큼 윤기가 나지 않았고 비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가녀린 몸이었다. 나는 그녀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릴 인내심이 없어 일부러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했다. 그녀는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기도를 멈추었다. 그리고 매우 유연하게 돌아 앉았는데 그 모습에 조금 압도당했다. 그녀는 나와 친구들을 찬찬히 둘러보더니 아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민이 많은 친구들이 왔네. 어서 앉으렴.”

“안녕하세요. 심 아줌마.” 한이 익숙한 듯 인사했다. 하지만 그 점쟁이 아줌마는 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시선은 오직 나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불타오르듯 강렬했다. 나는 말도 꺼내기 전에 속마음을 다 들킨 기분이었다.


“안녕 탄, 무슨 일로 왔니?”

“아…. 아…. 저 그러니까…”


내가 말을 더듬기 시작하자 한이 답답하다 못해 옆에서 끼어들었다.


“부엌 이야기 들으셨죠? 아시잖아요. 아줌마. 우리 부엌에 가야 될 운명인지 좀 봐주세요.”


아줌마는 나를 이제 곁눈질하더니 앞에 있던 심상치 않은 모래알 세 개를 돌아가면서 만지작 거렸다. 한은 심 아줌마가 모래알을 굴려 보며 미래 점을 친다고 했다. 포는 긴장했는지 다리를 떨었고 한도 아줌마를 잠잠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줌마의 길고 이상한 주문과 이상한 춤이 이어졌다.   


“하!”


아줌마는 뭔가 큰 것을 깨달았다는 듯 소리침과 동시에 춤과 주문을 멈췄다. 나는 움찔 놀랬다. 그녀는 들고 있던 세 개의 돌을 앞으로 살짝 던지더니 짧은 탄성을 질렀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안 좋아 안 좋아. 음음.. 아니란 말이지.”


그녀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생각하는 듯했다. 무언가 안타까운 장면을 바라보는 듯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뭐가요? 뭐가 안 좋아요?”

“자네 말이야. 자주 깝죽거리는구먼!”

“…네?”

“거 돼먹지도 않은 놈이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고 망상이 심하고 말이야!”


아줌마는 왠지 호통을 치고 계셨다. 게다가 옆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한의 모습을 보자 성질이 났다.  참나.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아줌마의 퉁퉁한 입모양에서 혐오를 느꼈다. 


“하.. 이게 여기서 왜 이런 게 나왔을까. 탄, 너 아버지 계시니?”

“아.. 아버지요? 네…”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들, 그러니까 수장의 아들로 우리 동네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물론 나를 모르는 이도 없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굳이 아버지를 왜?


“아버지가 어딜 좀 가신 모양인데….”

“네?”

“위험해 위험해….”

“….”

“빨리 말려. 아니 아니야 말리지 마 말리러 가다 너도 죽을라.”


나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눈꺼풀은 미세하게 떨렸다. 이 아줌마 뭐야. 나는 아줌마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며 아줌마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은 조금 놀란 기색으로 얼음이 된 나를 보더니 이내 부엌 이야기나 하시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가 온 것은 탄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부엌에 갈 운명을 알아보러 온 것이라고. 심아줌마는 쯧 하더니 아직 철도 안 들고 뭐 했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부엌? 아이고. 가지 마. 그 위험한 곳을 뭣하러 가는 거야.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딨 다고!”

“거기에 보물이…”

“보물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그러다 죽으면 아무 소용없어!”


되려 우리에게 호통을 치셨다. 나는 그때부터 아줌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저 아버지 이야기에 심장이 팔딱거렸다. 이 아줌마… 뭘 아는 거지? 정말 예언을 하실 수 있단 말이야? 지혜를 얻으러 왔다가 이게 웬 낭패인가. 아니 그러나 저러나 포가 나의 옆구리를 쳐 한을 보라고 신호를 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한의 표정을 놓칠 뻔했다. 그는 내가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만큼 얼어있었다. 그가 그토록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한.”


나는 한을 불러 보았지만 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어.. 어.. 탄.”

“일어나. 가자.”


우리가 서둘러 일어나고 있을 때 심아줌마는 말했다.


“내일 비가 올 거야. 습도가 높아지니 날개 조심해.”


우리는 그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 나왔다. 기분 나쁜 아줌마였다. 나는 나대로 화가 났고 한은 무슨 일인지 말이 없었다.


“한, 왜 그래? 괜찮아?”

“어. 아줌마 말이… 우리가 다… 죽는다고.”

“….”

“너희 아버지도…”

“야! 정신 차려!”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정신을 차려야 하는 날파리가 누구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는 한인가 나인가. 나야말로 정신 차리고 모든 추진을 저지해야 할까. 아니면 쓸데없는, 고작 미신을 진심으로 믿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을 설득시켜야 하는가. 


헉헉헉… 한은 나의 신경질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나를 두려움에 떤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하.. 하… 난 보물을 좋아한다고.”

“… 일단 지금은 가서 쉬고 다시 만나자.”

“그래. 모두 잘 가.”

“자.. 잘 가.”


심아줌마가 말한 이야기가 아무래도 찜찜했지만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삭제하려고 할수록 그녀의 이야기는 더욱 선명해졌다. 나의 머릿속에 심아줌마의 이야기는 급기야 점쟁이의 말이 아닌 뉴스 리포터의 말처럼 사실이 되어버렸다. 아니 잠깐! 내일 비가 온다고 했나? 내일 만약 비가 온다면 아줌마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닌 게 된다. 이것도 때려 맞출 확률이 50퍼센트. 나머지 50퍼센트에 대한 위험 감수를 하신 것인가? 아니면 비 오기 전날에 허리가 아프기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내일 비가 올까 봐 두려움에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2차 회의가 시작됐지만 나는 늦잠 자느라 회의에 늦었다. 포와 한은 먼저 와서 참여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보다 더 멀리 자리를 잡았다. 아 그러고 보니 비가 왔었나? 눈부시게 빛나는 찬란한 햇빛만 기억이 난다. 


비는 역시 오지 않았다! 점쟁이 아줌마 잘난 척 하기는! 당장 비 소식도 하나 못 맞추면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괜히 실실 웃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이는구나.”


헉. 조금 피곤해 보이는 나를 보시고 옆에 앉은 노인네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김아저씨가 앉아 있는 중앙 무대 쪽으로 시선을 던졌는데,


“아침에 비가 와서 날씨가 좀 추웠는데 괜찮니? 탄?”


그 노인네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어야 했다. 


“비… 비가 왔었어요?”

“아까 왔었지. 금방 해가 나타났지만.”


잠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비가 정말 왔었다니. 나는 눈 하나 깜박할 수 없을 만큼 얼어있었다. 나는 의지적으로 심아줌마 말 따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다시 중앙 무대를 노려봤다.  노인네는 앞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해가 강렬해서 그런가 습도는 오히려 낮았단다. 그 덕에 날개는 멀쩡 하더구나.”

“그… 그렇죠?”


비가 오긴 했는데 습도는 높지 않았다…. 심아줌마의 예언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니 그럼 그냥 틀린 거 아닌가? 나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는지 노인네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루를 비롯한 반대파들은 그 숫자가 더 많아졌다. 우리 쪽과 거의 비등했다. 1차 회의 때 루와 사나이가 했던 발언들은 역시 큰 설득력을 얻었나 보다. 그들은 왠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격렬한 언쟁이 오고 가자 김아저씨가 회의봉을 두드리며 무리들을 진정시켰다. 아버지가 앉던 김아저씨의 옆 자리에는 다른 분이 앉아 계셨다. 


“우리는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 일부러 노출시킬 이유는 없지요.”


루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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