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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Mar 27. 2024

나중에 부러워나 마

“우리는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 일부러 노출시킬 이유는 없지요.”


캬… 역시 말 잘한다. 루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잘생긴 표정도 지어 보였다.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루가 역겨워 빨리 주위를 환기시켜야 했다.


나는 아무도 반문하지 않는 틈을 타 목소리를 내었다. 



“보물을 얻는 것에는 물론 위험이 뒷따르겠지요. 위험이 클수록 보상이 큰 것이니까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도전해 볼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물을 즐기고 있는 우리들을 부러워나 마시죠.”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나는 오랜만에 받는 집중에 얼굴이 벌게질 뻔했지만 특유의 관종끼로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수박즙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행동해야 합니다. 나는 탐험할 것입니다. 도전합니다. 용기 있는 자들은 저와 함께 하시죠.”


어랏!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렇게까지 앞장설 생각은 없었는데. 무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쟤 뭐야.’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큰일 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중은 와아아아! 환호했다. 뭐? 정말? 진짜야? 


맞았다. 무리는 원했다. 그 레몬을! 지금이야 말로 나는, 무리의 호응을. 그 와중에 난 루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나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느꼈다. 루가 주장한 안전우선 제일주의는  사실은 그가 겁쟁이어서 그랬던 것이었음을. 



이런….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 절실했고 더 감성적이었다. 게다가 호소력 있었다. 말로 내뱉은 순간 마음에 열정의 불이 화르르 붙어버렸나 보다. 무리들의 호응은 순식간에 불타올랐고 모두 박자에 맞추어 발을 굴렀다. 


“부엌! 부엌! 부엌!….”



그리고 어느새 나는 혁신가가 되어 있었다. 


회의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회의장 밖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무리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드디어 원하는 답을 얻게 된 무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나는 그 틈 속에서 환호를 마저 받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저 멀리 지나가고 있는 루와 눈이 마주쳤다. 루는 나를 한 동안 바라보았다. 루 옆에는 치도 있었다. 나는 무리의 응원에 용기를 얻었는지 평상시라면 엄두도 못 낼 행동을 했다. 어느새 루쪽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루.”

“탄. 수척해 보인다.”

“살이 빠진.. (여기서 말려들 뻔했다.) 됐고. 뜻을 함께 할 수 없으면 갈라설 각오나 해.”


“갈라서? 하하… 너희 무리가 정말 부엌에 가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부엌이란 곳… 정체를 알게 되면 거기 갈 날파리가 몇 마리나 될까 싶은데.”

"정체라니! 무슨 말이야!"


나는 씩씩거릴 뿐 그렇다 할 말을 더 이어내지 못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포가 얼굴을 들이밀며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여.. 여기 이 있는 우.. 우리 편을 좀 봐! 너.. 너희들 보보보다 더… 많아!”


 루와 사나이는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더니 천천히 뒤돌아 섰다. 나는 갑자기 한 마디라도 더 하지 못한 것이 억울해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부엌에 가고 싶은 무리가 더 많거든!”


성질에 못 이겨 말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비겁했다. 가만히 있으면 지질해 보일까 봐 몸이 움직였는데 내가 발로 한 대 걷어 차줄 것처럼  앞으로 나가자 포와 한이 나의 양다리들을 잡고 저지했다. 다행이었다. 정말 때릴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나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던 길을 유유히 갔다.  얄미운 놈들. 그들 뒤통수에다 소리친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별로였다. 창피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오자 괜히 한 번 포의 어깨를 잡고 고뇌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좀 자연스러웠으려나.  


포와 한은 나를 붙잡고 무리 쪽으로 이동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원정대를 소집해야 해. 작전도 세워야 하고.”

“어.. 그래 맞아.”


무리 곁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나는 진지하다 못해 엄숙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들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고   전에 보지 못한 결의의 얼굴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내가 할아버지 강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따르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건 할아버지 리더십이 나에게도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겠지만 나로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탄, 언제 어떻게 갑니까. 부엌. 작전은 있으시고요?”


나이 든 아저씨가 공손하게 물었다. 나는 생각 좀 하느라고 양 더듬이를 서로 맞대고 몇 발자국 옮겼다. 나는 아저씨의 간절한 눈빛을 애써 피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어떤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확신을 주었던 아까의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걱정이 앞섰다. 


‘할아버지 제게 지혜를 주세요.’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뇌가 멈춰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 할아버지가 내 얘길 들을 리가 없지.


“음… 일단 비행을 많이 하신 분들이 팀을 짜주세요. 그 팀에서 작전이 만들어집니다. 이동할 때 필요한 물자들을 공급할 수 있는 팀도 만들겠습니다.”


어랏. 뭐지. 그럴듯하게 말하는 나.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었는데. 나는 그저 입을 열었을 뿐인데 적절한 제시를 그럴듯하게 해서 깜짝 놀랐다. 오. 나 제법인데? 정말 할아버지가 도와주신 걸까. 나이 든 아저씨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아… 제 아버지요? 사실 아버지는 부엌에 미리 출발하셨습니다. 미리 가셔서 상황과 루트를 파악하고 오신다고 하셨어요.”

“역시 그러셨군요. 간밤에 혼자 비행하신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배신하고  혼자 떠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무리들의 배신이 여간 큰 게 아니었습니다만.”


밤 사이 아버지는 배신자가 되어있었다. 혼자만 보물을 독차지하려고 무리를 배신하고 모두 잠을 자는 사이에 몰래 도주한 쓰레기. 그는 한참이나 아버지의 대한 가십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무리들의 분노는 생각보다 컸다. 


“그랬군요. 하지만 아버지가 혼자 떠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요.”

“모두들 초에게서 들었다고 했습니다. 가짜 소문을 터뜨린 그녀에게 벌이라도 내릴까요?”


아… 초…. 초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냐 아저씨가 잘못 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냐의 사이에서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ㅊ... 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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