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작

by 봄남

그런데 문제는 나다.




이제 다연이가 타임루프 이용자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망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 나는 어제 다연이와 진지한 이야기를 한 후의 일들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명 우리는 늦은 밤까지 이야기한 것 같은데…. 다연이와 내가 같은 사건에 타임루프를 쓴 것이다. 안타깝게 마지막으로 쓴 사람은 다연이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조차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엄마 나 어제 어떻게 왔어?”

“넌 그 말을 왜 그렇게 자주 물어봐.”

“내가 자주 물어봤어?”


엄마는 걱정 어린 시선을 던졌다.

“아하하하하. 그냥 하는 말이야 하는 말.”

“너 기억력에 문제 있는 거 아니지?”

“그러엄. 시험을 이렇게 잘 보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

“그래서 나 어제 어떻게 왔어?”


찰싹!


엄마는 내 등 위에 있는 모기라도 잡듯이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이로서 알리가 없는 어제의 사건.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했을까. 이따가 다연이를 만나면 서로에 대해서 타임 루프를 쓰지 말자는 제안을 해야겠다.


하굣길,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미꽃이 벽을 타고 올라가며 흐드러지게 펴 있었고 거기에 다연이와 도진이가 함께 있다. 둘이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연신 웃어댄다. 뭐야 나 빼놓고. 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상태로 그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도진이가 내 표정을 확인한 후 합죽이가 된 입모양을 하며 자리를 떠나 주었다. 다연이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다연아. 너 혹시… 날 피해?”

다연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웃었다.


“아니.”

“그럼 다행이다.”


나는 금세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약간 신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재자리에서 깍지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콩콩댔다. 그녀는 늘 그렇듯 별 다른 보충설명 없이 단답식이었다. 나는 사실 그녀가 날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여서 원래 따져 묻고자 했던 질문들을 다 까먹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다연이가 갑자기,


“네가 좋아지려고 해.”


라고 말했다.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늘 입밖에 꺼내고 싶어서 안달 났던 그 말. 그 말을 지금 네가 한다고? 나는 주먹을 쥐고 잠시 뒤를 돌았다가 주먹을 쥔 김에 허공을 한 번 휘두르고 다시 빙그르르 돌았다.


“내…. 내가? 저. 저. 정말?”

“응. 그런데....”

“자자잠깐. 그런데? ‘그런데’ 하지 말자.”

“그런데 이 감정. 진짜일까?”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갑자기 시 쓰는 분위기? 가짜 감정도 있냐고! 나는 아직 이 상황을 좋아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분간이 서지 않자 점점 신경질이 났다.


“가짜 감정도 있어? 네가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이 진짜겠지!”나는 화를 냈다.

“이거 다 네가 조작한 상황이잖아.”


띵….

조작했다고? 뭘? 너를 환심사기 위해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이, 나의 노력이 다 조작이라고? 내가 얼빠진 표정을 짓자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가 축구공을 걷어차주고, 안 좋은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날 도와주고, 커피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널 좋아했었을까?”

“그….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라도 얼마든지…?”

“네가 좋아한다던 ‘아프리카’ 가수가 누군지 알아?”

“….”

“‘울부짖는 들개들’ 주인공 나이가 몇 살인줄 알아? 작가 이름은?”


그렇다. 나는 타임루프가 없었다면 대번에 걷어차일 꼬락서니였다. 한순간 한순간이 나의 조작이고 만들어낸 대사였으며 작품이었다.


“아니 몰라. 그래 맞아. 내가 다 조작한 거야. 네가 너무 좋아서.”


나는 소리쳤다. 이렇게 다 들킨 이상 무슨 소용이야.


“나도 네가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와 내가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 우리가 나누는 말들은 의도된 것들이고, 기억들의 조각은 하나씩 사라지고 무언가 자꾸 중요한 걸 놓치고 헛도는 것 같아. 이 감정이, 이 관계가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진짜 네가 아니라 나의 취향대로 만들어진 너를 좋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나는 심히 토라졌다. 화가 났다. 다연이 뒤로 로맨틱하라고 응원이라도 하고 있는, 배경으로 걸려 있는 장미 넝쿨을 발로 차서 걷어차버리고 싶었다.


“우리 이제부터 서로에겐 타임루프를 쓰지 말자. 진짜 감정을 알아가는 거야. 네 말대로 지금까지 난 가짜였으니까.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그때도 좋으면 진짜인 거잖아.”

“타임루프 안 쓸 자신 있어?”

“물론….”


나는 말을 흐렸다. 사실 불안했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머리 위로 까마귀라도 울고 가면 좋을 타이밍인데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타임루프 쓰지 말자. 시간여행 따위 하지 않는 거야.”그녀가 결심한 듯 말했다. 마침 지나가는 아저씨가 우리 둘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래 누구라도 기억을 잃으면 그땐 기회가 없어지는 거다.”

“동시에 쓰지 않고 혼자만 쓰면 사실 상대방은 몰라.”

“난 널 믿을 거야.”


나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다 못해 쏘아보았다.


“그래. 한 번 해보지.”

“그럼 타임루프 없이 나랑 데이트 한 번 하는 거….”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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