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루프

by 봄남

핸드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너도 데자뷔야? 하하하. 내가 한 말 따라 하는 거야 지금?”

“아니. 데자뷔 아니고 진짜 조금 전에도 했던 말 같아.”


나의 목소리가 진지했는지 그녀의 웃음소리는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우리 이따가 잠깐 만날래?”


다연이가 진지하다.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느낌만으로 그렇다고 해도 섣불리 타임루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타임루프 이야기를 꺼내면 그녀가 믿지 않을게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속이 복잡한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생각보다 빨리 집 앞에 왔다. 그녀는 아파트 단지 내 제일 큰 나무 옆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연이의 실크처럼 빛나는 긴 생머리를 잠시 감상한 후 성큼 다가갔다. 마음과 달리 나는 왠지 화가 났고 다연이는 표정이 좋지 않다. 나는 무얼 예감하고 있는 것일까.


“재윤아.”심상치 않은 말투.

“…어.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오겠다고 하고. 할 말 있어?”


내가 두려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뜸을 들였다. 그녀가 시멘트 틈사이로 삐져나온 야생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내 마음은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응? 무슨 일이야?’를 반복하며 물었지만 그녀는 돌부처처럼 끄떡없었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옆에 있는 나무 주위를 돌았다가 다시 그녀 옆에 앉았다. 데자뷔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두려워질 일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지만 도무지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드디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은 타임루프 이용자야.”

“... 어?”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너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라니?


그녀가 내뱉은 사실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나는 더 정신 산만하게 그녀 주위를 왔다 갔다 했다. 생각이라는 걸 해야 되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나의 허튼짓을 그녀가 알지도 모르니 엄청 창피하다는 것 밖에는.


“근데 ‘나도’라니? 내가 타임루프 이용자라는 걸 알았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그게… 어쩌다 가끔 기억이 사라지더라고.”


그래 사라진 기억! 왜 그런 거야. 왜 내가 손잡으려고 했던 그 기억이 사라진 거야? 기억이 사라진 게 왜?


“타임루프를 사용하는 사람이 똑같은 사건에서 타임루프를 같이 사용한다면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만 기억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이게 오류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상대방이 희미하게 기억을 유지할 수 있게 돼. 언젠가 너의 행동과 말이 똑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래서 네가 시간 여행자라는 걸 눈치챘어.”

“그…그런 게 있었어?”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타임루프자일게 뭐람! 우리 엄마아빠도 아니고, 도진이도 아니고, 이수아도 아닌데!?


“아니 그나저나 타임루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나는 나만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아는 한 이 동네에선 너와 나 둘 뿐인 것 같은데?”

“이 동네? 그럼 뭐 다른 동네에 더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나의 촐싹대는 목소리와 달리 그녀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난 여전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걸음은 신경질적이었고 얼굴엔 열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넌 어쩌다가 타임루프를 하게 됐어? 언제부터?”

“꽤 오래전부터? 몇 년 된 거 같은데.”

“뭐라고? 그렇게 오래됐다고?”


다연이는 타임루프를 사용하는 사람치고 너무 평범해 보였다. 이렇게 위대한 마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금 당장 지니고 있는 가난이나 학교 성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또 두 번째 세 번째 의문이었다. 나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내가 그녀를 꼬시기 위해서 했던 어떤 일들을 알 수도 있단 말인가? 나는 답답한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넌. 그걸 자주 사용해? 그냥 딱 보면 그걸 사용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거든.”나는 그녀가 타임루프 여행자라고 거짓말이라도 했을까 봐 잠시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래? 나 엄청 사용하는데. 하하.”

“주로 사용하는 목적은?”

“언니.”

“언니? 언니가 있어?”


다연이는 외동딸인 줄 알았는데 언니가 있단다. 그러고 보면 나는 다연이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응. 하나밖에 없는 언니. 난 부모님도 없어. 언니랑만 같이 살아.”

“부모님이 안 계셔?”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는 다른 남자 따라서 나랑 언니 버리고 도망갔어.”

“아…. 그랬구나…. 네가 항상 밝아서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어. 아픔이 있는 얼굴이 아니잖아.”

“하하하하. 아픔? 벌써 오래전 일이야.”

“그런데 왜 언니 때문에 타임루프를 쓰는 거야?”

“언니가 자꾸 사고가 나. 사고에서 매번 언니를 구해주고 있어. 언니마저 잃으면 안 되거든. 나의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

“아….”


이상하게도 다연이는 말하는 동안에도 슬픈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은 소망으로 빛났다. 나의 놀래는 기색에도 그녀는 오히려 덤덤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타임루프의 목적은 그녀에 비해 매우 하찮았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타임루프를 쓰는 그녀 앞에서 나는 왠지 작아졌다.


“너는 타임루프 자주 해?”

“어? 어. 아니. 음. 신중하게 쓰려고 노력하지.”


거짓말이다. 다연이에게 잘 보이려고 연습장처럼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아껴두는 게 좋을 거야.”

“왜?”

“쓰면 쓸수록 힘이 없어지는 것 같아. 시간 기간이 짧아지는 느낌? 너무 많이 쓰면 강제적으로 돌아오기도 해.”

“아. 그렇구나. 난 아직 그런 걸 못 느껴서. 매뉴얼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이게 혹시 왜 시작된 건지 알아?”

“나도 잘은 몰라. 가끔 텔레파시처럼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 빼고는 거의 정보가 없어. 내가 아는 정보는 타임루프 커뮤니티에서 얻은 거야.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타임루프 이용자 모임이 있더라고. 가입자 수가 20명이 채 안되는 걸 보고 너무 터무니없는 모임이라 사람들이 관심 없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어. 정말 타임루프 사용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 거기에 나도 가입했는데 가입 조건이 10분 전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제시한 넘버로 문자를 보내면 되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나에게 회원 사이트 비밀 번호를 알려주는 방식이었어.”

“완벽한 증거네. 그런 사람들이 거의 스무 명이나 된단 말이야?”

“응.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 타임루프는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마음의 능력’이라고. 하하하하. 특정 사건이 방아쇠가 되어서 타임루프가 시작되고 물리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정서적으로 발생하는 초능력이래. 그걸 시작하게 되는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 같아. 그래야 정서적인 진동이 크게 발생한다나 뭐라나.”

“이걸 시작하게 되는 극적인 사건이라…. 나름 체계적인 설명인데?”

“응 그런가 봐. 넌 주로 언제 타임루프 썼어?”


대체로 너 때문인데. 그렇게 말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쩐지 내가 고백하려고 할 때마다 일이 잘 안 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어쩌면 다연이가 나의 의도를 이미 알고 날 피하고 있었던 걸까?


“뭐…. 친구가 승학이한테 맞을 때, 시험 성적, 아버지 투자. 이런 곳에다가…. 하하하.”


말하고 나서 왠지 부끄러워졌다. 돈과 명예만 좇는 속물로 보이는 것은 싫었다. 게다가 내가 갖춘 모든 것들이 나와 부모님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버리게 되자 시험성적과 투자 이야기는 괜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빨리 화제를 다연이 쪽으로 바꾸기로 했다.


“언니랑 사이가 좋은가 봐? 보통 자매들은 싸우기 바쁘잖아. 난 형제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가족이라고는 언니 하나밖에 없는데 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야. 나보다 3살밖에 안 많은데 한참 어른 같아.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거기엔 잠깐의 슬픔이 깃들었다가 그녀의 화사한 미소와 함께 이내 사라졌다.


“나는 언니를 위해서 매일같이 타임루프를 썼었어. 한 번은 언니가 집 앞에서 쓰러져 있는 거야. 너무 놀래서 타임루프를 써서 과거로 돌아간 다음 언니를 미행했어. 그리고 언니가 다치거나 힘들어지지 않게 과거를 조작했어. 다행히 그 이후로는 언니가 괜찮아졌어. 나는 언니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는 날에는 언니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타임루프를 쓰는 거야. 언니에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다연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우울했지만 그 와중에 나는 그녀에게 아는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한층 더 그녀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것,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타임루프를 이용한다는 것은 나만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어쩐지 그녀는 가끔씩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다연이는 고등학생의 일반적인 삶과는 다른 세상에 있었다.


“피곤했겠다.”


부모님의 부재로 인해 의존할 사람은 언니 밖에 없었다는 것. 언니의 존재가 삶의 전부이고 그 언니가 다칠까 봐 걱정하는 삶은 고등학생 나이에 할 고민은 아니니까.


“응. 언니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는 안 해본 알바가 없을 거야. 그러다가 어느 연예기획사로부터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어. 언니가 정말 예쁘게 생겼거든.”

“너보다?”

“하하하. 내가 엄지 손가락이라면 언니의 미모는 팔 길이 전체야.”

“재량 방법이 특이… 하다.”


나의 장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계속 말했다.


“언니는 정말 예뻐. 길거리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야.”

“그래서 지금은 연예인이 되려고 준비하는 중?”

“응. 그런 것 같아. 언니가 노래는 잘 못하는데 춤선이 예쁘다고 가수 하라 그랬데.”

“우와. 조만간 티브이에서 보겠네?”

“응. 조만간.”


그랬다. 다연이는 저녁 10시가 되면 곧장 집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엄마한테라도 혼날 것처럼 신데렐라가 되어 허겁지겁 가서 언니를 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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