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만남

by 봄남

어느새 학교에 다다랐다. 경영대 건물 302호로 향하고 있었지만 재현은 그 와중에도 내일까지 써야 할 과제와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302호로 들어가자 이미 앉아 있는 5명의 여학생들이 진성을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 진성의 뒤로 재현이 보이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환호했다. 잘생겼다! 멋있다! 를 연신 외치며 그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떠들썩하게 굴었다. 재현의 얼굴이 잠시 붉어졌다.


“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여학생들은 더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 그중 몇은 재현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다리를 동동 구르며 더 악을 질렀다.


“야 이거 뭐 팬카페야?”


진성이 질투 섞인 반응을 보이자 재현은 아까 차 안에서 느꼈던 위화감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재현은 캠퍼스 안에서 잘생긴 사람 탑 5 안으로 들 만큼 얼굴 깡패로 유명했다.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이라 이미 외모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봄만 되면 여러 동아리에서 그를 서로 데리고 가려고 혈안이 되었고 그걸 열망을 이용해 진성은 베프 찬스를 쓴 것이다. 그가 동아리에서 재현을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동아리 내 그의 위상은 수직 상승했다.


재현은 고생 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콧날 때문에 그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차가워 보였지만 그가 미소를 지으면 한 없이 천진난만해 보여 미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침마다 드라이할 시간이 없어 머리카락은 항상 삐죽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마저도 나름 의도한 스타일 같았다. 하지만 재현은 스스로 자신의 외모를 찬양할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외모가 그가 처한 가난에서 그를 구원해 주는 일은 없었다. 가난은 매일 그를 코너로 몰아넣었다.


‘잘생긴 게 밥 먹여주나.’


누구는 모델도 하고 연예계 쪽에 발을 들여 인생 탈바꿈을 한다는데 재현은 그런 기회도, 끼도 없었다.

한 여학생이 수줍게 나와 동아리 소개를 시작했다.


“저희 동아리 이름은 BGS 즉, 베타 감마 시그마(Beta Gamma Sigma, ββ)이고요. 경영학에서 학문적 업적을 장려하고 기리고, 리더십과 전문적 우수…..”


그녀는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면 나올 것 같은 문장으로 수려하지만 지루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동아리 소개는 쓸데없이 길어졌다. 재현이 그녀에게 집중하자 그녀의 볼이 더욱 빨개졌다. 그래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는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는 부분에서 쓸데없이 실실 대며 웃곤 했다. 그런 웃음이 반복될수록 지루함은 더 심해졌다. 그녀가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테이블을 둘러앉은 학생 중 두 어 명은 연달아 하품을 했다.


똑똑똑…. 철컥! 하고 문이 열렸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어!?”

“안녕하세요. 벌써 시작했나요? 늦어서 죄송…”

“들어와 레아. 난 너만 기다렸잖아.”


진성이 벌떡 일어났다. ‘여기에 온 이유는 너 때문인데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면서 진성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의 달라진 태도를 보고 그제야 돌아본 재현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짝이는 귀걸이 세 개를 달고 긴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쓸어내리며 앉고 있었던 그 여학생은 바로 그 허둥지둥녀였다. 재현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짐과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아직도 꿈인가.’


그는 눈치를 보다가 레아와 인사했다. 그녀는 재현을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재현은 최대한 떨리지 않은 목소리를 내느라 목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진성이 구역질 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만약 이게 꿈이 아니라면 진성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인데 지금 같아선 저 녀석에게 그런 교양 있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정면으로 보는 그녀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예뻤다. 실크처럼 부드럽게 출렁이는 긴 생머리와 가녀린 옆모습으로 기대했던 대략의 느낌보다 더 아름답고 예뻤다. 찬 기운을 많이 벗어내 이젠 제법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더러는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그녀도 파란색 반팔을 입고 있었다. 재현은 정말 쓸데없이 자신도 내일은 반팔을 입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이름이…”

“차레아 예요.”

“네… 이름이… 예쁘시네요.”

“전 그쪽 이름 알아요.”


맹랑한 그녀의 목소리는 높은음 자리표의 피아노 소리 같았다. 차분했던 뒷모습과 다르게 그녀가 생기 발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또 다른 매력이 전해졌다. 재현은 그녀를 보며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저요?”


재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당황하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그가 이미 재현은 캠퍼스의 제왕이라며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재현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자 레아를 먼저 알지 못한 것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송구스러웠다.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음음.”


좀 전에 동아리 소개를 하던 여학생이 둘의 대화가 길어질 것 같자 헛기침을 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방금 전 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재현은 자리를 고쳐 앉고 계속되는 동아리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그는 더 이상 졸지 않았다. 옆에 앉은 그녀가 자꾸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재현이가 동아리도 했어?”

“어 몰랐어? 내가 걔 우리 동아리에 데려 오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다고.”

“동아리 얘기는 안 했어. 하긴 걔가 동아리 얘기만 안 한 건 아니지. 군대 갔다 왔을 때 만났으면….”

“그때 재현이가 우리 학교 탑 킹카였지.”


진성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재현이 대학 때부터 여자를 사귀고 있는지 몰랐다. 그렇게 따지면 꽤 긴 연애였다. 엄마가 주섬주섬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하길래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나섰다. 그걸 본 진성은 바로 나를 따라나서서 자기가 하겠다며 고무장갑을 끼고 나섰다. 나는 얼씨구나 좋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바로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무자비하게 내 등을 찰싹 때리셨다.


“으그. 니가 해야지! 남자를 시키고 그래.”


진성에게 민망한 엄마는 만만한 내 등만 구타하셨다. 엄마는 구시대적이어도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을 핑계 삼으셨다.


난 ‘남자’ 이야기에 신경질이 나서 눈을 야무지게 흘겼지만 엄마는 본체만체 방으로 들어가셨다.

부족함 없이 자란 그가 어떻게 이런 넉살이 있을까 싶었다. 진성이는 작년에 결혼했다. 아마도 아내에게 배운 한 수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너, 아내 집에 혼자 놔두고 이렇게 늦게 가도 돼?”

“우리 자기는 일본 갔어.”

“일본? 놀러?”

“응 친구들이랑 2박 3일.”

“야… 팔자 좋다.”

“다 내가 뼈 빠지게 번 돈으로 호사를 누리시는 거야.”


그가 고무장갑을 낀 채 내 얼굴 앞으로 v자를 들어 보였다. 철없는 행동이어도 진성이가 하니 나쁘지 않았다. 진성의 아내도 진성의 그런 점을 좋아했으리라. 그의 아내도 진성을 닮아 낯가림이 없다. 나는 이들의 에너지를 늘 부러워했다. 어디에서나 큰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았다.


나는 그에게 아내는 무얼 하냐, 애는 언제 갔냐며 이런저런 질문을 오지랖 넓은 시누이처럼 했다. 나도 영락없는 아줌마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그는 그런 걱정 말라는 듯 나보다 더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의 질문 한 개에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만 가지를 대답했다. 나는 질문을 던져 놓고 바로 흥미가 떨어진 사람처럼 처음에는 잘 듣다가 중간 즈음은 대충 흘려보냈다.


그의 이야기가 너무 길고 산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언제나 그렇듯 재현이 이야기로 이어졌고 역시 레아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에도 데려 왔었을까 하는 뜬금없는 의문이 들었다.


“나 결혼할 즈음에도… 그럼 사귀고 있었겠네?”

“응. 아니, 썸. 근데 누나 결혼식에도 가긴 갔었어.”

“누가? 레아가?”

“응. 나랑 같이.”

“근데 왜 소개 안 시켜줬어?”

“소개해 줬어. 근데 그땐 정식으로 사귀진 않았을 때야. 썸 탈 때라 소개해주고 말 것도 없었지만 재현이 그 녀석, 누나에게 레아를 들이밀었지. 누나가 정신이 없었나 보네. 결혼식이 좀 도깨비 시장처럼 정신이 없긴 하지. 특히 당사자는 더.”


재현이 집에 와서 가족과 대화하는 일은 드물었다. 학교 끝나면 일을 했고 늦게 까지 일을 하고 오는 날이면 피곤에서 바로 골아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를 나와 엄마는 더 불쌍히 여겼다. 그렇게 바빴던 아이였는데 언제 연애를 했을까. 얼마나 대단한 여자였길래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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