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봐, 쟤 얼굴좀 보게

by 봄남

동아리를 빠져나오면서 진성은 레아, 재현이와 함께 저녁 약속을 잡았다. 재현은 그날 자신이 연신 웃고 있었다는 것을 잠시 화장실 거울을 보고 알았다.


‘얼굴 나쁘지 않은데?’ 오랜만에 보는 행복한 표정에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그런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하하 호호 웃으며 진성과 레아가 대화하고 있는 곳으로 기분 좋게 뛰어들었다. 복학하고 처음 느끼는 캠퍼스 생활이었고 너무 행복했다. 삼겹살 5인분을 시켰지만 술을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진성은 어울리지 않게 술 알레르기, 재현은 내일 일을 위해, 레아는 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캬…, 레아야 우리 재현이는 공부도 잘하고 책임감도 뛰어나 그래서 알바를 엄청 많이 뛰어 셀 수도 없다 야.”


진성은 콜라를 벌컥벌컥 마신 후 컵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약간 그윽한 눈 빛으로 레아를 보며 말했다. 목소리는 컸고 취기가 가득 올라온 아저씨 같았다.


“누가 보면 너 소주 세 병은 마신 줄 알겠다.”


재현이 팔짱을 끼고 진성의 쇼를 지켜보며 비아냥댔다.


“하하하. 그런데 무슨 아르바이트하세요?”

“그냥 이것저것. 과외도 하고 택배나 대리기사도 하고 그래요.”

“우와. 벌써 돈을 버시는구나.”


그녀의 해맑고 철이 없으며 순진하게 동경하는 말투는 왠지 재현을 감동시켰다. 학생의 임무는 공부이고 그 외 돈을 버는 일은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신세계를 듣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재현은 자신이 한참이나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볼을 꼬집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지만 마음과 다르게 그는 그녀의 눈빛을 피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괜히 콜라를 허겁지겁 마시다 사래가 걸려 헛기침을 연신 했다. 재현 얼굴의 붉은 기가 지금 그녀의 물기 가득한 깨끗한 어둠 속 별빛 같은 순수한 눈을 봐서 인지 콜라에 목이 메어서 그런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음. 집안이 좀… 어려..”

“아 그래그래! 우리 재현이가 얼마나 으른인데 으른!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다니는 우리들 보다 훨씬 낫다니까. 난 이 친구 존경해. 내가 제일 존경하는 친구야.”


진성이가 재현의 말을 가로챘다. 진성이는 재현의 가난이 허물 거리라도 되는 듯 그의 처지를 덮어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진성은, 재현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꾸며 대는 말이 자신이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성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현은 그런 꾸며 대는 말이 배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거짓이었다. ‘내 가난이 그렇게 창피하냐!’


하지만 별 수 있나 재현은 진성의 착한 마음씨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진성이 부끄러워하는 가난을 재현은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후로 이어진 의미 없고 바보 같지만 배꼽 빠지게 재밌는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 푼 후 그녀가 턱을 괴고 재현을 보며 말했다.


“다음에 또 밥 사주세요.”


그녀가 물방울이 또르르르 흐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 말이 없었던 건지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느라 그런 건지 재현이 그녀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대답을 하지 않자 진성이 또 끼어들었다.


“어! 그럼 그럼.”


재현은 마법이 풀린 듯 숨을 내 쉬며 맞장구를 쳤다. 그를 종종 얼음으로 만드는 레아는 재현의 눈을 찌릿하게 만들 정도로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른쪽 귀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귀걸이 세 개는 찬란한 빛을 발했다.



며칠 후 누나의 결혼식이 있었다. 마침 밀려 있는 알바와 과제 때문에 한동안 진성과 레아를 만나지 못했기에 그는 그들을 누나의 결혼식에 초대하기로 했다.


“야. 웬 결혼식? 나야 괜찮지만 레아도?”

“어 내가 시간이 없잖냐.”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해. 그냥 밥 먹으러 오라 그래. 나 그날 아니면 이번 달에 밥 먹을 시간 없어.”

“…..”


진성은 이상한 놈이 다 있다며 핀잔이라도 주려고 입을 벌렸지만 이내 다물었다. 재현의 처지를 완전 공감할 수는 없어도 조금 이해는 갔기 때문이다.


재현이는 누나의 결혼식에 정장을 차려입고 하객들을 맞이했다. 재현이의 외모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역시 빛을 발했다. 사람들은 그의 옆으로 지나가면서 몇 번 더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일부러 돌리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이렇게 많은 인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하객들이 찾아왔다. 진성이 레아와 함께 결혼식을 찾았다. 레아는 청바지를 입었지만 격식을 차린 느낌이었다. 아마도 꽃 잎처럼 흩날리는 시폰 블라우스 덕분이었을 것이다. 레아는 재현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정말 많이 달라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잘 생겼는데 말끔히 차려입은 옷은 그의 얼굴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재현의 누나가 입장하기 시작하자 레아는 누나의 드레스에 눈을 떼지 못했다. 재현은 그런 그녀를 한 없이 바라보았다. 현악 삼중주 소리와 흔치 않게 차려입은 정장, 고풍스럽게 걸려 있는 샹들리에만 보면 짝을 찾기 위해 뽐내러 온 연회장 같았다. 재현은, 상냥하고 절제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마치 나를 뽑아 주세요,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고 갈구하는 여인들 틈 속에 남자라고는 하나도 관심 없어 보이는 레아, 그녀의 시무룩하지만 호기심이 가득 찬 모습에 사로 잡힌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얼른 그녀의 옆으로 가 ‘shall we dance?’라고 정중하게 물어야만 될 것 같았다. 그 순간을 만끽하며 도취되는 것도 잠깐, 누나가 막 남편이 된 사람과 함께 퇴장 행진을 했다. 재현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자신 옆에 선 진성과 레아를 누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누나, 여기 내 친구들.”

“안녕하세요.”


재현이 자랑스럽게 소개해 주었다. 누나는 재현이의 친구는 진성이 외에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레아와 재현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진성이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한 번 놀러 오라고 했다. 누나는 레아를 한 번 보더니 그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으므로 슬쩍 눈웃음 인사를 한 후 폐백실로 가버렸다.


“너희 누나 예쁘다.”


레아가 저 멀리 사라지는 누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정말 감탄했다.


그들은 그럭저럭 괜찮은 뷔페식을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아리 식구들이 동방에는 왜 안 나오냐고 성화라는 둥, 과제는 다 했냐, 어떤 교수님이 스캔들이 생겼다는 등등 재현이 그동안 따라갈 수 없었던 소식들을 들었다. 그들이 먹고 대화하는 동안에도 재현이는 레아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여보세요? 야, 야, 나 좀 봐. 넌 레아만 보이냐.”

“어. 어?”

“레아만 보고 말하냐고.”

“아 내가 왼쪽을 보는 버릇이 있어서. 네가 왼쪽에 앉든지.”


가족 친지들은 재현이의 친구 그러니까 레아를 보면서 비약적인 의미를 두었다. 재현이랑 ‘사귀는 여자’라고 하면 양반이었다. ‘깊이 만나는 사이’ 라든가 ‘동거를 한 다더라,’ ‘여기까지 온 거 보면 곧 결혼할 사이’와 같은 심각한 의미를 덧붙였다. 재현은 물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많은 음식과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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