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문이 잠깐 주목 하라며 와인잔을 들고 포크로 두드렸다.
“내가 레아에게 선물을 준비했어요. 짜잔.”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는 마침내 찾았는지 만족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레아의 손을 잡고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헐….”
진성이 역시 그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지였다.
“예상보다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소리라도 지를 줄 알았어. 하하하.”
놀란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레아를 보며 크리스문이 능글맞게 말했다. 레아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태였다. 예상치 않았던 전개였는지 그녀는 조금 부담을 느껴 말을 잇지 못한 것 같았다.
“어… 예뻐요…”
한약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아주 어렵게 침을 꿀꺽 삼킨 다음 겨우 내뱉은 한 마디였다.
“마음에 들어?”
“… 감사해요.”
재현은 레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여유 있게 와인을 마시는 크리스문은 자신의 행동이 제법 뿌듯했는지 레이저를 쏘아 대는 재현에게 눈치 없이 윙크를 해댔다.
재현은 크리스문의 반칙 같은 수법으로 기가 죽을 위인은 아니었지만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한대 쳐주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다. 반색하며 소리를 지른 건 주하였다. 반지를 보자마자 주하는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레아의 팔을 앙탈스럽게 때리기 시작했다.
“어머어머 웬일이야! 진짜 예쁘다 레아야! 이거 정말 비싼 거잖아!”
옆에서 호들갑 떠는 주하, 이 광경이 신기한 듯 웃고 있는 진성과 달리 레아는 말없이 반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자신의 약지에 천천히 껴 보았다. 하얗고 가냘픈 손가락 위로 보석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한참을 감상한 레아는 그제야 다른 손으로 입을 살포시 가리며 웃음을 지었다.
크리스문은 레아의 머리카락을, 그 실크처럼 부드럽고 빛이 나는 그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재현은 그녀의 비단 같은 머리카락을 보며 언젠가 안락하고 매끈한, 쉽사리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저 머리카락을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녀가 반지를 보며 크리스문의 어깨에 기대려고 고개를 기울이자 재현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머리와 크리스문의 어깨가 닿을 때의 마찰음이 쿵 하며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재현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는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크리스문은 풀장 옆에 캠프 파이어를 만들었다. 마시멜로를 구우며 궁금하지 않은 그의 성공기와 미국 학교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억지로 듣고 호응해 주느라 기운이 빠졌다. 불이 소멸할 즈음 장작이 더 필요해지기 시작하자 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모자란 장작을 더 가져오느라 진성의 차에 갔다 돌아왔는데,
“레아 어딨어?”
레아와 크리스 문이 없었다. 재현이 진성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어깨만 살짝 들었다 놨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레아와 크리스문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들고 왔던 장작을 내팽개치다시피 내려놓고 빌라 안으로 가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거실을 지나 복도를 지나고 코너를 돌았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옳은 행동이었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꼭 찾고야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이를 잃어버리면 꼭 이런 마음일까. 재현은 떨어지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를 구해야 해!’ 그리고 아까 먹은 맥주 탓인지 성질이 나서인지 모르겠으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져서는 분노의 발걸음으로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가 문고리를 잡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레아였다.
“어! 재현오빠.”
“레아야. 어딨었어? 너 찾고 있었잖아!”
재현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약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레아가 말했다.
“… 날? 왜?”
재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화를 낸 건가 싶어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레아는 재현의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을 응시하며 말했다.
“난… 크리스문 배웅해 주러.”
“배웅?”
“어…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지금 가봐야 한다고 해서.”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재현은 그제야 자신이 레아의 가냘픈 두 어깨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살며시 놓아주고 민망한 양손을 쥔 채 턱으로 갖다 대었다.
“어… 미안. 네가 없어진 줄 알고. 크리스문…이 가셨구나…”
“하하… 없어지긴! 내가 애야?”
민망한 분위기를 지우려 레아는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저 멀리서 진성이 마시멜로도 떨어졌다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