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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snow Dec 09. 2022

이걸 버려? 말어?





매일 밤 꿈을 꾼다.

잘 때 꿈을 꾸지 않는다는 사람을 보면 신기할 만큼 나에게 꿈을 꾸지 않는 밤은 없다.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이 많았던 낮 시간들이 마치 꿈에서 계속 연결되는 것처럼 꿈도 참 복잡하고 피곤하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식 날, 평상복을 입고 혼자 식장 안에 덩그러니 서있거나 준비를 마치고 식장 안으로 입장은 했는데 하객이 아무도 없어서 동동거리는 등 진땀 나는 꿈을 참 많이도 꿨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당황스러운 꿈은 남편을 만나 지극히 정상적인 결혼식을 올린 후 깨끗이 사라졌다.


하지만 삶이란 늘 끊임없이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과정일 테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며 때마다 나를 채우는 고민 들은 어김없이 꿈으로 연결되었다. 매일 밤 조용하고 어두운 나의 꿈이라는 공간 안에서

또 다른 일상으로 이어져가고 있었다.

대부분은 지치고 피곤한 꿈들이었다. 고민 많고 생각 많은 내가 꿈에서라고 단순하고 쿨한 사람이 될 리는

없으니. 그런 고단한 꿈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하루, 꿈을 깨고 일어나 꿈속의 장면을 생각하며 혼자 키득

키듯 웃는 날이 있었다.

어쩜 나의 마음을 이렇게 잘 드러냈을까 하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하고 꿈에서 보였던 장면이 자꾸 머리를

스치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꿈에 대해 풀어놓기 전, 나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흘리자면,

사람들이 우리들의 옛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흔히 그리는 것처럼, 우리 집 그 사람도 술을 한잔 하고 올 때면 한 손에 알 수 없는 검은 봉지 하나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검은 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보통 술을 한 잔 하고 오겠다는 날에는

새벽 1시는 넘어야 들어오니 그 취기 가득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나는 아이들과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집 근처에는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서 사 오는 것인지 어김없이 식탁 위 또는 냉장고 안에는 이미 식어빠져 볼품없이 쪼그라든 통닭 한 마리가 들어있거나 아이들 간식거리가 든 검은 봉지가 올려져 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아무리 늦어도 12시까지는 들어오라는 나의 말을 또 어긴 것에 대한,

적당히 한잔하고 들어오면 좋을 것을 기어이 저렇게 절여진 배추 꼴을 하고 들어온 것에 대한 울화가 벌컥

올라온다. 그리고 그 화를 어찌하지 못하고 기름에 물들다 못해 투명해져 있는 통닭 봉투를 거실 한구석에

내던지듯 쏘아놓는다.

그렇게 잠시 혼자 씩씩거리면서 식탁 앞에 앉아 있다 보면 나와 아이들을 생각해서 늦은 밤 비틀비틀

저것들을 사들고 왔을 남편의 모습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그려진다.

‘사람이 죄지, 네가 뭔 죄겠니’ 결국 패대기쳐있는 음식들을 들어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마치 아빠가 자신들을 위해 선물을 사다 놓은 것 마냥 해맑게 웃으면서 좋아하니 그 귀여운 얼굴들에 대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똑같은 풍경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내 속을 뒤집고 지나간다.

그리고 꿈에서도 그 장면이 나타났다.          


한잔하고 들어오겠다는 남편. 분명 꿈에서도 나는 화가 났던 것 같다. 가볍게 한잔하고 들어오라는 내 말에

걱정하는 마음은 모르고 “내가 애야? 만날 일찍 들어오라고 하게”라는 말을 던지며 무심하게 나가버리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음날, 어김없이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꿈이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그 사람이 냉장고 안에 또 무언가를 갖다 넣어놓았다는 것을.

그런데 꿈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냉장고 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는 나.

냉장고 안에 있는 것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이었다.

정확히 우리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갈색 3L 크기의 음식물 쓰레통이였다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은 아주 새것 같이 닦아놓은 음식물 쓰레기통 안을 열어보니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갓 담은 깻잎 김치가 정갈하게 담아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도는 푸릇푸릇한 색의 깻잎 위에 딱 알맞게 올려져 있는 붉은색 양념들.

나에게 깻잎 김치는 어느 밥도둑보다 으뜸인, 가끔씩 먹고 싶어 할 때면 남편이 기가 막히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그렇게 애정 하는 반찬이, 보기만 해도 침 넘어가는 고운 자태로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고이 담아져 있다니.

꿈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버려? 말어?'

버리자니 너무 맛깔나게 생긴 이 귀한 것들이 아깝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또 냉큼 꺼내 먹기에는 어제의 그 술독을 쉽게 넘어가 주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고, 그것도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들어있으니 이걸 어째?

정말 꿈속에서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잠에서 깼다.




꿈도 참, 매 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꿰뚫어 볼 수 있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냥 예쁜 그릇에 담아져 있었다면 아주 잠깐 고민은 했겠지만 그래도 못 이기는 척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한 입 맛 나게 집어 먹었을 텐데. 왜 하필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있어서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게. 안 그래도

접었다 폈다 하는 내 마음을 꿈에서까지 이렇게 고민하게 만들 일인가.

결국 결말은 짓지 못하고 꿈에서 깼다.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참 맛깔나 보였던 꿈속에서의 깻잎 김치가 자꾸 떠올라 나도 모르게 연신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안방 문틈으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 남편의 등판이 보이자 괘씸함이 올라왔다.

꿈에서마저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나.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담으라고 깻잎이나 두 묶음 사다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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