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푸바오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한 번이라도 푸바오 영상을 본 사람들은 귀여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치명적인 존재감의 판다 푸바오. 전부터 푸바오를 보러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놀이공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가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언제라도 보러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푸바오가 중국으로 간다는 기사를 접할수록 조급함이 생겼다. 그동안 푸바오 영상을 보면서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이름처럼 힐링이 되었기에 떠나기 전 꼭 만나고 싶었다.
평소처럼 푸바오 영상을 봤지만 애틋함은 커져만 갔다. 그런 내게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
“푸바오 보러 이번 주에 다녀오자.”
그가 어느 때보다 멋져 보였다. 명절이 끝나고 마음이 계속 심란하던 차에 보고 싶었던 푸바오를 만나러 가는 건 더할 나위 없는 기분 전환이었다. 가는 날 아침부터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으나 이왕 가기로 했으니 망설이지 않고 출발했다. 기다리는데 힘들 것을 예상하고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을 든든히 먹고 에버랜드로 향했다.
얼마 만에 놀이공원인가. 가는 길에 나는 연신 “놀이공원은 이제 신나지도 않아. 푸바오 때문에 가는 거지.”했었다.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놀이공원이 주는 설렘과 곳곳에 보이는 분위기에 기분이 한껏 들떴다.
“여보, 나 놀이공원 좋아하네?”
“저기 서 봐. 사진 찍어 줄게.”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거대한 판다가 서 있는 곳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에버랜드에는 눈만 돌리면 푸바오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커다란 시계탑 밑에는 '너를 만난 건 기적이야. 고마워. 푸바오.'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걸 보니 울컥함이 밀려왔고 우리는 푸바오를 만나기 위해서 길고 긴 줄에 동참했다.
‘여기서부터 140분.’ 팻말이 보였고 이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놀이 기구를 탈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남편이랑 수다를 떨면서 느긋하게 기다려야지 했는데 예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푸바오 보는 시간은 단 5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러다가 비 맞으면서 기다리겠는데?’ 우산을 챙기자고 했으나 괜찮다던 남편이 머쓱해했다. 다행히 비는 조금 내리다가 멈췄다. 드디어 판다 월드에 본격적으로 입장했고 앞으로 갈수록 두근거렸다.
판다를 만나기 바로 전. “여러분은 오늘 러바오와 푸바오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날 오전에는 엄마 아이바오와 쌍둥이 아기 판다 루이바오, 후이바오를 볼 수 있었고 나는 오후 시간이어서 러바오와 푸바오를 만날 수 있었다. 입장 후 제일 먼저 러바오가 맞이해 주었다. 듣던 대로 온순한 성격에 졸린 건지 꼼지락거릴 뿐 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 러바오를 보며 마냥 행복했다. 다물어지지 않는 내 입은 연신 ‘와’ 모양과 웃는 표정이었다. 곧이어 레서판다 레몬이 보였고 그 앞에서 다시 눈을 떼지 못하고 귀여움에 빠져들었다. ‘귀여운 건 최고야!’ 레몬이가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에 넋을 잃고 보고 있다가 다시 러바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멀지만 러바오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진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한결같이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서니 우리 푸공주님은 송바오님이 새로 만들어 준 초록색 해먹에서 벌러덩 누워있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었던 푸바오를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니 훨씬 좋았다. 5분의 시간밖에 없는데 이쪽으로 한 번 안 돌아봐 주나 마음속으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때 불현듯 푸바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먹에서 꼼짝 안 할 것 같더니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한 바퀴를 휙 돌아서 저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팬 서비스로 퍼포먼스를 해주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놓칠까 봐 바쁘게 사진을 찍었다. 동영상과 사진을 둘 다 찍고 실물로도 봐야 하니 정신이 없었다. 푸바오를 보는 사람들은 판다 월드에 입장 전 조용히 해달라는 공지를 잘 지켰다. 실제로 사진으로 담아내고 직접 눈으로도 보느라 말할 틈이 없었다.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푸바오가 걸어서 내 쪽으로 가까이 오자 행복함은 두 배가 되었다. 푸바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남편은 판다를 보자마자 매력에 빠졌다. 때마침 송바오님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더니 금세 쪼르르 사육사님께 다가가는 푸바오의 모습을 보면서 영상으로만 봐오던 둘의 케미를 알 수 있었다. 짧은 5분이었지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판다 월드를 나오니 빗줄기가 굵어졌고 비는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통로로 연결된 굿즈샵에 들어가서 홀린 듯 이거저거를 손에 담았다. 푸바오를 닮은 인형과 판다 우산, 엽서를 사고서 나왔더니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우산을 펴는데 당황스럽게도 처음 사려던 장우산 대신 골랐던 판다 우산은 아동용이었다. 쪼그마한 우산은 곧 망가질 것 같았고, 장우산보다 비싸게 샀는데 '이게 뭐람?' 했다. 판다 캐릭터에 홀려서 샀던 거였고 좋은 날이니까 웃어넘겼다. 덕분에 비를 많이 맞았고 결국 일회용 우산을 비싼 가격에 산 꼴이 되었다.
이대로 가기는 아쉬워서 판다 월드 줄을 다시 설까도 잠시 생각지만 체력이 지쳤다. “사파리는 보고 가야지?” 둘 다 같은 의견이어서 사파리 줄에 섰는데 이것도 오래 기다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긴 줄에 힘없는 우산을 들고 섰다. 웬걸, 판다 월드보다 줄이 빠지질 않아서 더 힘들었고 긴긴 시간 끝에 사파리 버스를 탔다. 신기하게도 피로는 동물들을 보자마자 스르르 사라졌다. 호랑이, 사자, 곰을 보면서 내내 즐거웠다.
사파리를 보고 나오니 퇴장 시간이 가까웠고 날씨는 어둑해졌으며 비는 계속 내렸다. 남편과 놀이공원 데이트는 처음이었지만 놀이 기구는 하나도 안 탔다. 판다를 만나고 사파리에서 동물 친구들 만난 게 전부였다. 푸바오 만나는 게 목적이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푸바오를 보고 와서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직접 만난 이후 이전보다 영상을 더 찾아보게 되고 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우리가 에버랜드에 다녀오고 나서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나는 날짜가 확정되어서 방문객은 훨씬 늘었다. 대기 시간이 한참 더 길어져서 한 번 더 방문하려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이처럼 기다림이 길어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건 여태껏 푸바오가 안겨준 행복이 얼마나 컸던 걸까 짐작해 본다.
동물이 주는 사랑은 따뜻한 온기가 있다. 그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판다 푸바오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었다. 나의 강아지 사랑이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3년이 되는 시간 동안 키워온 자식 같은 아이를 보낸다는 건 오죽 힘들까. 푸바오를 보낼 사육사님들의 마음이 어렴풋이 헤아려진다. 강철원 사육사님의 바람처럼 유채꽃 피는 때에 푸바오가 떠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부디 행복한 기억을 품고 새로운 곳에서 판생을 잘 살아가길 바라며 나중에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영원한 아기 판다 "푸바오야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곁에 있는 사랑이를 쓰다듬으며 서운한 마음을 달래본다. 나도 사랑이에게 후회 없이 더 잘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