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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Mar 19. 2024

즐거운 방구석 여행

대리만족 세계 여행



최근에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 예능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뒤늦게 정주행 하고 있다. 시리즈가 3까지 나왔는데 마지막 여행인 '마다가스카르'편부터 보게 되었다. 평소에도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유독 더 재미있어서 회차가 끝날 때마다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일단 여행을 가게 되면 짐이 엄청 많은 사람으로서 출연자인 기안84의 짐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을 만큼 단출했는데 ‘짐이 저것밖에 없다고?’ 솔직히 부럽기까지 했다.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서 버겁다고 느끼곤 하는데 나는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행 가서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돌아온다면서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일상을 그대로 옮겨 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챙겨야 할 짐 때문에 여행 가는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고 돌아와서 바로 정리할 걸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게는 여행의 숙제였던 짐이 기안84를 통해서는 다르게 보였다. 기안84는 짐이 없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가볍게 떠나는 진정한 여행자처럼 보였고 여행의 모든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이왕 여행을 시작했으니 처음 겪는 경험들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나한테는 괴상해 보이는 음식도 야무지게 먹었고, 때론 불편함도 자청하면서 여행에 오롯이 집중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생각했다. 숙소에 불이 자꾸 나가서 깜빡거리기도 했는데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분명 ‘여기 왜 이래? 집에 가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또 입에 맞는 음식이 별로 없어서 자주 굶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은 굳이 여행 가서 불평불만을 쏟아낼 바에야 집에서 편히 있는 게 낫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달랐다. 매번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도리어 덤덤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나와 정반대인 그들의 모습과 여행을 지켜보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여행 프로그램의 좋은 점은 정보 외에도 기가 막힌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가 펼쳐진 곳에서는 비록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무척이나 감탄했다. 시청하면서 거저 얻는 눈 호강에 감사할 따름이었고 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도 갖게 해 줬다. 그동안 나의 여행 경험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여행을 살짝 기대해 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많은 곳을 누비는 여행자를 꿈꾸기도 했었지만 결국 실행을 못 하고 살았다. 이제부터라도 안전하면서 다양한 여행을 해보고 싶다. 행여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더라도 아주 이상하지 않다면 맛을 경험해 보고 현지 문화들도 직접 체험해 본다면 좋을 것 같다. 겁이 많아서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여행객이 되진 못하겠지만 조금은 다른 모양의 여행을 그려보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을 먹는데 불쑥 남편이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고 싶어.” 

“나도 예전에는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

여행도 꿈처럼 사라진 걸까? 간절하게 가고 싶은 장소 하나 없다는 게 어쩐지 속상했다. 예전처럼 바라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싶다. 무감각해져 버린 것들이 많아졌을 때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났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법. 경쟁 사회에서 경쟁만 하다가 어느새 나를 잃어버린 걸까. 그렇다면 차근차근 하나씩 찾아가면 된다.


똑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잘 살아가는 건 아니다.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 야무지고 알차고 단단하게 살고 싶다. 경쟁이 아닌 행복한 사람으로의 내 모습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고정된 생각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낄 때 가끔은 새로움 속에 들어가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럴 때 여행만 한 것이 없다. 티브이 앞에서 대리 여행만 하고 있노라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당장 가까운 곳에 바람이라도 쐬러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하고 요즘 부지런히 시간을 내어 돌아다니는 중이다. 비록 세계 일주가 아니더라도 낯선 장소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받는 것은 틀림없다. 짐 없이 간단하게 갔다가 돌아오는 게 아직 더 좋은 나는 방구석 세계여행이 딱인 것일까.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나무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나무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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