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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Jul 03. 2024

고막이 찢어진 날

고막 조심하세요


평소처럼 분주한 아침이었다. 감고 나온 머리를 말리려다가 찾을 물건이 생각나서 잠시 들고 있던 면봉을 귀에 슬며시 걸쳐두었다. 평소 버릇도 아니었고 그날따라 했던 행동이었다. 찾고 있던 물건은 나타나질 않아서 젖은 머리를 말리려던 순간. '으악!' 갑자기 벌어진 일은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귀에서는 이상한 잡음이 들렸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아픔에 놀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을 거라고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약속을 취소하고 병원을 가야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서 병원 문이 안 열린 시간이었다. '일단 머리부터 말리자.'

머리를 말리는 내내 다친 귀 쪽에서 소리가 멍멍하게 들렸다. 나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9시에 맞춰 왔는데도 꽤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내 뒤에 앉은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수다가 한쪽 귀에서 잘 들리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정작 의사 선생님의 출근이 늦었다.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생님의 출근과 함께 진료가 시작되었다.

대기 이름에서 내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조급함과 불안함이 밀려왔다. '잘못된 거면 어쩌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이야말로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드디어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 뭐야 이거?"

"왜요...?"

"이거 봐봐요. 고막이 다 찢어져 버렸네. 큰일이네."

"네? 고막이요? 찢어졌다고요?"

"그냥도 아니고 반 이상이나 찢어졌어요. 자칫하면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해요."

"..."

찢어진 내 고막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귀가 더 아팠다. 그제야 통증의 심각성이 크게 느껴졌다. 많이 아팠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멀쩡하게 왔냐면서 의사 선생님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속으로만 대답할 뿐이었다.


곧바로 청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자리를 옮겼다. 세세하게 청각 검사를 받으면서 안 들리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검사에 집중을 못 하기도 했고 떨리기까지 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다시 진료실로 가서 귀에 임시방편으로 테이프 같은 걸 붙여두기 위해서 마취를 해야 했다. 간호사분이 손을 잡아주면서 자기를 꽉 쥐라고 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그분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마취 시작. '헉!' 다친 고막을 마구 헤집는 듯한 아픔이었다. 잘 참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인데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함에 한동안 멍했다. 잠시 후 마취가 퍼지자 의료용 테이프를 사용해서 고막 쪽에 붙였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앞으로 귀가 나을 동안 착한 일 많이 하시고 덕을 쌓으세요."

"저 나름 착하게 살았는데요."

"더더더 착하게 사세요. 복받아야 낫습니다."

고막이 아물어야 큰 수술을 피할 수 있다며 의사 선생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며칠 뒤 병원에 가고 또 일주일 뒤에 병원을 내원했다. 그리고 고막이 아물고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귀도 점점 잘 들리고 먹먹함은 덜해졌다. 가끔 먹먹함이 있었지만 금방 사라졌고 아픔도 이전보다 약해졌다.'나의 고막아, 고마워.'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얼마나 기적인지 아파보면 알게 된다. 사실 이곳저곳이 계속 아팠다. 올해는 그런 자잘한 아픔이 많아서 무언가에 정성을 쏟을 수가 없었다. 매번 흘러가는 날짜를 체감하며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좌절했는데 고막을 다친 후에 그런 생각을 덜하게 되었다. 작게 아픈 날이 많았지만 버틸 수 있는 아픔이었음에 감사함이 생겼다.

그동안 글을 쓰고 싶으면서 쓰지 않았던 건 어쩌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멈춤이 없다면 알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기에 멈춰있던 지난 몇 개월을 허송세월로 탓하고 싶지 않다. 다친 고막은 한동안 계속 조심하며 지내야 한다. 부디 아프고 나서 깨닫지 말고 평소에 나 자신을 더 살펴주자는 약속을 해본다. 모든 하루가 기적이라는 것도 매일 잊지 말기.





다친 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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