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연말

무사한 1년의 마무리가 되길

by 봄여름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트리 장식으로 겨울을 맞이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끼리 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말하고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연말의 기억은 대부분 즐거웠고 기대감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최대한 조용하게 지나가고 싶은 연말이다. 송년회, 신년회 등 바쁜 연말과 연초가 좋았던 적도 있었다. 연말에 약속이 없으면 허전하기도 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만 하더라도 나는 친구들과 모여서 작은 파티를 하고 밤새 수다를 떨었다. 늦게까지 이어진 대화는 눈이 감겨가면서도 즐거웠다. 그랬던 예전과 다르게 친구들도 나도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보내며 약간의 소홀함도 당연하게 되었다. 나라 상황은 뒤숭숭하고 한 해가 지날수록 어떤 방향으로 잘 살아갈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연말이 조용하게 흘러간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차분하게 보내고 싶었다. 사람 많은 곳은 가기 싫고 웨이팅 있는 식당은 더 가기 싫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좋은 건 무탈한 날들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소중함이 가장 우선이게 되었다. 평소처럼 귀여운 사랑이랑 남편과 함께 잔잔한 영화 한 편 집에서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케이크와 내가 좋아하는 맥주가 준비되어 있다면 최고의 크리스마스니까. 대신 아침 고요 수목원을 저녁 산책 겸 다녀왔다. 갖가지 조명이 빛나는 곳에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복잡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구경하고 걸으며 묵묵히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다.


사실 나는 크리스마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12월이 되기 전부터 캐럴을 들었고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설레며 기다렸다.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어떤 것도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카드, 트리, 선물, 영화 등등을 놓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대수롭지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최근에 방문했던 에버랜드에서 그나마 오랜만에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퍼레이드 공연이 인상에 남았는데, 오후에는 눈과 비눗방울을 뿌려줘서 순수한 겨울 분위기를 연출했고, 야간은 화려한 불빛으로 휘황찬란했다. 진짜 같은 산타 할아버지도 등장하자 내가 여전히 크리스마스 좋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잘한 행복을 하나 더 추가한 날이었다. 그날은 12월 2일이었고 연말도 잘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뉴스를 붙들고 살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벌써 오늘이 12월의 마지막 날이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따뜻하게 보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날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참담하고 슬픈 날이 더 이상 없길 소망한다. 부디 모두에게 무사한 1년의 마무리가 되길 바라본다.




에버랜드 야간 퍼레이드 공연, 무탈했던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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