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의 의미
“오랜만에 삼겹살에 소주 어때?”
남편이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제안을 했다.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고고!’를 외쳤다. 남편은 지친 하루 끝에 나와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는 날이 위로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술을 입에도 안 대는 사람이라는 반전이 있다. 소주는 마땅히 나의 차지다. 이렇게 말하면 술꾼 같지만 사실 나도 소주 세 잔이 주량인 사람이다. 예전에는 소주를 잘 마셨다고 하는 남편의 말은 확인할 수 없으므로 알 길이 없다. 어디까지나 내가 모르는 옛이야기일 뿐이다. 한 사람만 마시지만 늘 소주잔을 함께 채우고 짠! 을 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술을 마시게 되었다. 마셔야 할 이유가 없었고 일단 맛이 없었다. 지금도 소주 맛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때는 더더욱 '이런 걸 왜 마시지?'했다. 그랬기에 가끔 소주를 마시는 날이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스무 살,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의 술자리는 얼마 전 일처럼 기억난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티가 폴폴 나는 1학년들의 신입생 환영회였다. 나를 포함하여 술을 못 마시는 아이들은 쓴맛을 삼키며 억지로 먹어야만 했다. 그나마 맥주는 마실 수 있겠는데 소주는 알코올 냄새 때문에 힘들어서 나는 소주 잔을 들고 머뭇거렸다. 과의 특성상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고 음대는 기합을 받기도 했으며 자주 군기를 잡았다. 이날도 상황은 예외가 없어 보였다.
“야! 예수님도 포도주 마셨어. 너는 뭔데 안 마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J 선배의 말에 옆에 있던 동기들은 군말 없이 술잔을 들었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정적이 흘렀고 나 때문에 분위기가 해치는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소주 대신 맥주잔에 손을 뻗었다.
“신입생이 어디서 맥주를 마셔? 소주 마셔.”
“그럼 안 마실래요.”
또다시 J 선배가 말했고 나도 내 의사를 밝혔다. 분위기고 뭐고 가뜩이나 술이 먹기 싫은데 강압적인 말을 따르기는 더 싫었다.
"못 마시면 안 먹을 수도 있지. 왜 그러니? 괜찮아. 안 마셔도 돼."
때마침 4학년 선배가 나를 두둔했고 J 선배는 계속 째려봤다. 같은 여고 출신이었던 4학년 선배는 첫 만남부터 나를 예뻐했고 자상했다. 게다가 같은 교수님의 클래스이기도 했다. 자기보다 학년이 높은 사람의 말에 J 선배는 내게서 신경을 껐고 제일 먼저 취했다.
“저 먼저 집에 갈게요.”
뻘쭘한 자리에 계속 있기가 힘들었고 예의상 조금 앉아있다가 집으로 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되게 떠들썩하던데 나의 신입생 환영회는 시시하게 끝났다. 그날 이후로 J 선배와 마주칠 때마다 껄끄러웠으나 별다른 일은 없었다. 오히려 다시는 술자리에 부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던 내가 30대 이후부터는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연속적으로 ‘인생 왜 이래?’ 시기를 거치면서부터였다. 평소에는 주로 맥주를 선호하는데 조금 특별하거나 기분이 좋은 날에는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예전에 한 친구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술 한잔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고 속상해했는데 그때 그 말에 나도 같이 울었다. 나 역시 아빠랑 소주 한 잔 함께 못 한 것이 후회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소주잔을 보면 괜히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다. 혹시 남편은 일부러 종종 삼겹살에 소주를 먹자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그리운 추억을 꺼내보라고. 그런 거라면 정말로 당신은 아빠가 보내준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소주를 마시는 날이면 내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남편이 있다. 그럴 때마다 맹물도 아니고 눈물도 아닌 달달한 소주 맛이 난다.
소주란 어느 날은 맹물 같고 어느 날은 또 눈물 같은 게 아닌가. 어떤 날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버텨야’하는 순간도 있는 거라고. 구부러진 건 구부러진 대로, 뜯겨 나간 건 뜯겨나간 대로, 구멍이 뚫린 건 그저 뚫려 있는 채로 그렇게 말이다.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