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관식이 같은 사람

예측 가능한 사람과 함께하는 하루는 늘 잔잔하다

by 봄여름


“혹시 결혼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어림짐작으로 물어보았다. 사실 얼마 전 친구의 SNS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를 느낌이 왔다. 친구는 당황스러웠는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고, 내가 잘못 짚은 건가 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찰나였다.

“사실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친구는 다가오는 11월에 결혼한다고 말했다.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물어보니까 놀라서 아니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고 덧붙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커플 사진만 보고 어떻게 눈치를 챘냐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우리는 예전부터 확고하게 연하 남자는 절대 안 만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둘 다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두 살 아래의 남편을 만났고, 친구는 여덟 살 아래 남자친구를 만났으니까. 역시 인생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 남편은 관식이 같아.”

“우리 ○○이가 관식인데?"

한참만에 만나서인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드라마 이야기로 넘어갔다. '폭싹 속았수다'의 무쇠 같은 남자 주인공 '양관식'. 그런 다정하고 듬직한 관식이를 닮은 사람이 서로 자기 남편과 남자친구라며 우기기도 했다. 각자의 '관식이'들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함께 있지 않아도 신경 쓰이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안정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말을 예쁘게 하는 부분도 조금은 닮아있었다.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좋은 상대를 만났구나 싶었다.


“근데 너는 신부 입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웃었어? 안 떨렸어?”

“그러게. 그냥 웃음만 나오더라고.”

친구는 벌써부터 자신의 결혼식 때 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결혼식 때 환하게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제껏 봐온 신부 중에 최고였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하지만 나는 결혼식 전날까지 당일에 울까 봐 속으로 조마조마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나에게 남편은 대신 울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줬고, 정말로 결혼식 날 나는 줄곧 웃었고 남편은 울었다. 덕분에 결혼식 사진과 영상은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눈물 많기로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은 남편이 '눈물의 왕'이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다는 말이 아주 다른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꿈꿔오던 이상형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예상 밖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대부분은 싫어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조금 더 크게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운전을 할 수 있음에도 무서워서 피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 불안을 있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유일하게 막아준 사람이 남편이었다. 내가 걱정할 일이 없도록 항상 미리 말해줘서 그의 하루는 내 머릿속에서 그릴 수가 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늦을 경우에도 틈틈이 연락을 하고 약속한 시간에는 집에 돌아온다. 이해심도 깊고 말을 예쁘게 하며 우기는 걸로 싸움을 키우지 않는 편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어서 닮은 점도 많다.


약속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어김없이 남편이 지하철역 앞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생각해 보니 결혼 후, 혼자 집에 돌아가는 날이 거의 없다. 꼭 따라가겠다고 조르는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 사랑이를 데리고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기는 남편.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제나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나의 일상을 지켜주는 두 존재에게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더욱 분명해졌다.

‘친구야, 아무래도 내 남편이 관식이가 맞는 것 같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함께 있을 때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지 않아도 좋은 사람. 조금 더 정확히 말해, 함께 있지 않음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은 사람이 내겐 최고의 상대다.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끝내 알아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결핍 안에서 공기가 되어 서로를 옥죄지 않고, 숨 쉬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옆에 없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위성처럼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따뜻해지는 사랑. 이것이야말로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나를 마중 나온 남편과 강아지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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