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마라톤, 초여름의 응원 일기

함께 달리는 마음

by 봄여름


초여름의 기운이 완연한 유월, 뜨거운 햇살 아래 남편의 세 번째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내가 참가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허둥지둥 준비하는 나와는 달리, 정작 레이스를 펼칠 그는 평온한 얼굴에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가장 부러운 점은 좀처럼 긴장을 하지 않거나, 설령 긴장해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나는 늘 긴장을 하는 타입이다. 우리 부부의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나보다 먼저 채비를 마친 엄마와 언니를 만나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춘천으로 향했다. 우리 집의 또 다른 행사처럼, 온 가족이 함께 응원하러 가는 길은 늘 설렘으로 가득하다. 춘천 가는 길은 노래 가사처럼 아름답고 풍경이 좋았다. 창밖으로 스치는 초록빛 계절을 바라보며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겨우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기념사진부터 남겼다. 흐릴 거라던 일기예보와 다르게, 하늘은 쨍한 햇빛을 쏟아내며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대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워밍업을 하는 사람들,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 그리고 꽝꽝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까지, 모든 것이 활기로 넘쳐났다. 남편이 몸을 풀기 위해 달리는 동안 나는 출발선과 피니시 라인의 위치를 살피느라 분주했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파스 냄새는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했다. 사람들이 덜 붐비는 응원석으로 자리를 옮겨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사람 정말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마라톤을 하는구나. 대단하다.”

엄마와 언니랑 감탄하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으니, 곧 경기가 열린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두근거림은 내가 달리는 것도 아닌데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잠시 후 남편이 응원석으로 찾아왔고,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출발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발을 알리는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며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뿌연 연기 속에서 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먼저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음은 10km 코스, 남편의 차례였다. 멀리서도 나를 향해 양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에 어쩐지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완주 후 들어올 때의 감동과는 또 다른, 출발선에서의 벅찬 감정.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잘 뛰고 와.”

나도 힘껏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출발 신호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던 사람들의 물결 속에 남편의 뒷모습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갈 때까지, 나는 동영상을 찍으며 그를 배웅했다.


응원하는 자들은 이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지난 대회에서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했기에, 이번에는 아침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커피를 파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텀블러에 아이스커피와 간식거리를 챙겨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보냈던 터라, 그제야 의자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한낮처럼 쏟아지는 햇볕은 양산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늘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5km 코스의 1등 주자가 들어왔다. 이어서 한두 명씩, 그러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결승선을 통과했고,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여럿 보였다. 어른들과 나란히 달리고 끝까지 완주한 아이들의 모습은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이 뜨거운 날씨에 사람들은 어떤 매력에 이끌려 마라톤을 하는 걸까? 한 번도 달려본 적 없지만, 자기 자신과의 한계를 넘어서는 뿌듯함이 결국 또다시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우리 피니시 라인으로 가자.”

엄마가 서둘러 가자고 재촉했다. 남편은 지난 대회에서 예상보다 훨씬 일찍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엄마, 언니와 함께 피니시 라인 근처 응원석에 섰다. 이때부터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남편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올해 중 가장 더운 날이었고, 팔이 따끔거리는 것이 햇볕에 타고 있다는 증거였다.

‘팔토시 챙겨올걸.’

온몸으로 햇빛을 맞으며 오직 남편의 모습만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어수선한 진행은 온전한 응원을 방해했다. 10km를 달린 사람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현장에서는 5km 완주자들의 시상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아수라장 같았던 분위기 때문에 피니시 라인 응원석에 미리부터 기다린 보람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게다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일부 사람들까지 더해져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들어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엄마와 언니도 말없이 결승선만 응시했다.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어지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남편은 평소 같으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전화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초조함이 극에 달하던 순간,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엥? 뭐야?"

세 모녀가 뚫어지게 쳐다보았건만, 그 누구도 남편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이럴 수가!

대회 진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최 측의 미숙함으로 피니시 라인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앞서 두 번의 대회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당황했고, 정확히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남편은 이전 대회보다 날씨 때문에 더 힘들어 보였음에도, 오히려 황당해하는 우리를 위로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메달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어딘가 떨떠름한 기분은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열심히 달리고 노력한 남편이 결승선을 통과하며 응원하는 우리와 눈빛을 주고받는 감격적인 순간을 놓쳤으니까. 못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회장을 나와 차로 돌아갔다. 이날 마라톤 외에도 다른 행사까지 함께 열려 주최 측의 준비 부족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투덜거리는 나를 오히려 남편이 다독였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춘천의 풍경 속을 달렸다. 첫 대회 때 하프 코스를 뛰고 너무 힘들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던 남편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새벽부터 움직인 탓에 온 가족이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마라톤이 끝나면 고민할 것 없이 목 넘김이 좋은 국밥류, 그중에서도 순댓국을 먹자고 내가 제안했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장소를 옮겨 시원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는 어이없이 놓쳐버린 마지막 장면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남편은 마라톤 대회에서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뛰는 사람은 단 한 명이지만, 우리는 마음으로 함께 뛴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뿐만 아니라 모두가 깊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한마음으로 긴장했던 탓일 것이다. 앞으로도 함께할 소중한 가족 행사, 마라톤 대회. 이로써 각각 다른 마라톤 대회 메달 세 개가 모였다. 달리는 남편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증거이자 징표. 응원의 증거로 시계 자국을 남기고 타버린 나의 팔은 여름 내내 남아있겠지. 그나저나 남편, 이번에도 정말 멋졌어.



춘천호반마라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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