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사랑의 흔적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라는 말이 있다. 어림짐작으로는 알겠는데 뜻이 아리송한 말이었다. 아름다운데 왜 눈물이 나온다는 걸까? 그런데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다고 말하고, 신호등의 초록불이 파란불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때. 이제는 아름다움에 눈물이 나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 우연히 사진을 발견했다. 종이에 곱게 감싸져 있어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조심스럽게 펼쳐 보니 10년 전 이맘때,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바닷가에서 네 식구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맞다. 우리 가족 네 명이었지.’
세 명이 익숙해진 지금, 그 사진 속 모습은 낯설고 아련하게 다가왔다. 눈부시게 웃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슬프고도 아름다워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그제야 아름다워도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날처럼 지내다가 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던 그날 밤, 꿈에서 아빠를 만났다. 어느새 8년째 되는 아빠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는 못 해준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러웠던 것만 사무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나온 대사다. 하지만 자식도 못 해준 것이 사무칠 수 있다.
‘그때 그렇게 할걸…….’
후회해 봤자 늦었는데도 미련이 남아서 또 후회하는 게 자식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나는 자꾸만 못 해드린 것만 떠올리게 된다.
“우리 이제 고아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모가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가 떠나신 후 할아버지에게 더 애틋했던 엄마와 이모, 삼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부모님이 사라진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여전히 자식일 뿐이다.
요즘 엄마는 나와 언니를 자주 안아준다. 평소에도 손을 잘 잡았지만 지금처럼 이유 없이 안아주는 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엄마가 너희를 많이 못 안아주고 키운 것 같아서.”
엄마에겐 그게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항상 충분히 사랑받으며 컸다고 느꼈는데, 그 사랑조차 더 주지 못했다는 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애순과 관식의 딸, ‘금명’이가 바로 나라는 것을. 드라마 속 엄마와 딸, 아빠와 딸의 모습은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의 가장 소중한 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해 주기로 했다. 엄마는 아빠가 없는 부재를 더 큰 사랑으로 채워주고 계신다. 씩씩하고 밝은 할머니가 되겠다고 약속했고, 틈날 때마다 함께 사진을 많이 찍는다. 언젠가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이 시간을 가능한 많이 남기고 싶다.
아직 나에게는 하나의 하늘이 남아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아빠는 그곳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가끔은 ‘사랑’이라는 마음이 무서울 때가 있다. 잃어버릴까 봐서, 사라질까 봐서.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오래오래 남는다. 부재의 아픔과 슬픔도 결국 사랑의 기억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아름다웠던 순간의 증거이며,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비록 그걸 보며 눈물이 나더라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