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진심이 다시 우리를 웃게 했다
결혼 생활은 온전히 두 사람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이 결혼이 성공적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오직 부부만이 알 수 있다. 올해 맞이한 결혼 3주년 기념일은 다른 해와는 사뭇 달랐다. 기념일 당일은 시어머니 생신이었고, 바로 다음 날은 시아버지 생신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시댁과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내내 편치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편에 쌓여가는 불편함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지금으로선 그 감정을 외면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결혼기념일 전날 밤, 남편의 입에서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한마디가 깊게 박혀 맴돌았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만든 상황이 아닌데, 마치 나를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로 느껴졌다. 그 후로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남았다. 남편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결혼기념일을 앞둔 밤, 나는 괜히 혼자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일까, 이번 결혼기념일은 유쾌하지 않게 다가왔다.
결혼기념일은 결혼한 날을 축하하고, 그 의미를 기억하는 날이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만큼이나 특별한 날인데, 우리 부부는 그날을 우울하게 맞이했다.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고, 억울함마저 들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기분으로 지내야 할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무엇을 하면 될까?’ 한껏 내려가 버린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늘만큼은 일부러라도 애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결혼 3주년이 이대로 끝나버릴 것 같았다. 점심 무렵 남편과 통화를 나눴지만, 오간 것은 서로의 기분을 살피는 무의미한 대화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소중한 결혼 3주년을 망칠 수 없어!’
결심을 굳힌 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마카롱 가게에서 특별히 마카롱 케이크를 주문했다. 케이크 위에는 짧은 문구를 새겨달라고도 부탁했다. 알록달록한 예쁜 컬러의 마카롱처럼, 우리 부부의 우울한 하루에 다시 밝은 색을 입히고 싶었다. 주문을 마친 뒤, 남편에게 줄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시댁 이야기는 모두 내려놓고, 오직 두 사람의 이야기와 나의 진심만을 담았다. 처음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몇 줄을 써 내려가자 조금씩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문장을 고치고, 단어를 지우는 사이에 감정이 서서히 정리됐다. 편지는 남편을 위한 글이었지만, 결국 나 자신을 다독이는 글이 되었다. 쓰는 동안, 처음엔 복잡했던 감정들이 한 줄씩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오롯이 ‘우리’에 집중하자, 그제야 알았다. 둘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주문해서 받은 마카롱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그 위에 편지를 살포시 올려두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와 준비한 것들을 보고 표정이 조금은 풀리길 바라면서. 사랑의 회복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 사실이 오늘따라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결혼기념일 저녁 식사를 미루자는 말까지 나왔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럴 수 없었다. 예정대로 저녁 약속을 이행하기로 한 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조금 더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라면 냉장고부터 열어봤을 사람이, 이날만큼은 다르게 행동했다. 결국 내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여보, 냉장고 열어봐.”
남편이 의아한 표정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첫 번째로 마카롱 케이크를 보고 웃었고, 두 번째로 케이크 위의 문구를 보고 또 웃었으며, 세 번째로 내 편지를 발견하고 한 번 더 웃었다. ‘역시 편지보다 마카롱이 먼저인가 보다.’ 속으로 웃으며 남편의 반응을 슬쩍 살폈다. 그러던 중 편지를 읽다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건가?’ 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남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이 사람도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나도 울컥했지만, 괜히 놀리듯 장난을 걸며 웃었다. 강아지 밥을 챙긴 뒤, 남편이 예약해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둘만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사실 한껏 밝은 척했는데, 대화할수록 진짜로 마음이 풀렸다. 내가 웃으니 남편도 웃었다. 식사 내내 우리는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으며, 소소하지만 단단한 행복으로 결혼기념일을 채워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말했다.
“고마워. 오늘 힘들었을 텐데... 덕분에 웃을 수 있었어.”
그 한마디에 단단히 묶였던 매듭이 풀리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마카롱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끄며, 감사함을 곱씹었다. 행복이란 건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나의 하루는 내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느꼈다. 그날 밤, 좋아하는 방송 ‘우리들의 발라드’를 보며 마카롱을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마카롱에 어울리지 않게 맥주 한 잔을 마셨는데, 하루의 긴장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결혼은 결국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노력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완벽한 부부란 없지만, 서로를 향한 온기가 식지 않도록 매번 마음을 표현한다면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해를 함께 통과했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지내야지. 힘들었던 3주년의 밤이, 우리 부부에게는 또 다른 단단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자 앞으로의 시간을 헤쳐나갈 용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