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도를 되찾다
코끝에 찬 공기가 느껴지는 계절. 가만히만 있어도 더웠던 여름은 서서히 멀어지고, 바람은 서늘해져 이제는 외투가 필요하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 싫어했을 날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마 올해부터, 나는 가을을 싫어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늘 가을이 오는 게 싫었다. 남들이 예쁘다 말하는 단풍잎과 은행잎은 나와 상관없는 풍경이었다.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며 애써 멀리했다. 나는 가을의 낙엽이 전혀 아름답지 않은데, 사람들은 왜 단풍여행을 갈 정도로 예쁘다고 하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꼬여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애꿎은 낙엽들에게 분풀이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갑자기 바뀌는 공기와 계절의 온도는 그 시절의 나에게 버겁게 느껴졌다.
한동안 마음이 시려 있었다. 내면이 텅 비어 있던 시절엔 날씨가 조금만 차가워져도 견디기 어려웠다. 추위에 약한 편이지만, 그보다 더 싫었던 건 내 안의 냉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추웠다. 외로움이 커져서 공허함만 남았던 지난날들. 그래서일까. 요즘은 다른 이의 외로움에도 금세 마음이 쓰인다. 최근 사촌 동생들이 힘겨워 보였다. 한 명은 혼자서 외로움을 견디고, 또 한 명은 관계 속에서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테다. 똑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심정이 있다. 나 역시 삼십 대가 가장 길고 어두운 터널 같았으니까. 닿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확실한 행복 같은 것. 정말 있기는 한가 싶었다.
그때 나에게 가장 큰 위로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면을 살피고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나를 조금씩 이해했다. 외면하고 싶던 감정들을 마주할수록, 오히려 덜 힘들어졌다. 결국 시간이 약이 되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은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때때로 마음을 데워준 건 노래 한 줄이기도 했다. 아이유의 노래 〈아이와 나의 바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온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저앉기만 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길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며, 어느 순간 그 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고비를 넘긴다. 또다시 헤매는 날이 오더라도 돌아오는 길을 안다는 그다음의 노랫말처럼, 삶은 그런 것이다.
서른을 지나 마흔이 되어 알게 된 건, 여전히 삶은 불안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나이에 도달해서 안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삶을 조금 더 잘 살아내게 된다.
‘아, 나 지금 잘 살고 있구나.’
그런 때는 분명히 온다. 온다고 믿을수록 더 빨리 다가온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내가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랑하는 가족이 언제나 곁에 있었고, 든든한 남편이 함께였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까지.
며칠 전, 사랑이와 산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신나게 달리는 사랑이가 귀여운 건 물론이고,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가 산뜻하게 다가왔다.
‘가을, 꽤 괜찮을지도.’
비로소 알았다. 내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걸. 가을이 내 안에도 스며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