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도리가 뭐길래

정말 무례하시네요

by 봄여름


그날 나는 핸드폰 화면에 '아버님'이라는 글자를 보았을 때, 제사 때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댁은 제사를 지내는데 어머님과 큰 어머님이 제사상을 준비하고 정작 자손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몇 번 지켜보면서 설마 내게도 똑같이 시키실까 했는데 어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효를 대신하는 게 말이 되나? 정말 효를 하고 싶다면 본인 조상에게는 직접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어머님과 큰 어머님은 제사와 명절, 할머님 생신에도 똑같은 상을 차리셨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던 나는 이 광경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하물며 이날은 임의로 정한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의 제사였다. 전화를 받으면 힘들 거라는 본능적 직감이 왔고, 아니나 다를까 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 그래. ○○이는 야근이라고? 무슨 야근이라니?”

아버님은 언짢음을 가득 품은 어조로 말씀하셨다.

“너 오늘 제사인 거 알고 있냐?”

“아…. 네….”

“가만 보니까 너 참 철없다. 40이나 되어서, 나이도 먹었으면서.”

아버님은 대뜸 나이를 거론하시며 내게 철없다는 말로 공격하기 시작하셨다.

“너 말이야, 제사를 못 오면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고 해야지. 앞으로 너가 할 일인데. 너가 우리가 죽고 나서 할지, 안 할지 그거야 모르겠지만 그래도 며느리로서, 사람으로서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니? 조상을 잘 섬겨야지. ○○이가 안 오면 너라도 와야 하는 거고.”

“네…. 죄송해요.”

나는 쏟아지는 말에 듣고 있다가 겨우 대답했다.

“○○이가 너 말만 듣고…. 원래는 안 그랬는데…. 이럴수록 너가 욕먹는 거야.”

남편은 회사 일이 있어도 제사에 참여해야만 하고, 나 또한 남편이 오지 않더라도 와서 일하라는 말씀이셨다. 교통도 불편하고 운전도 못 하는 내가 그 밤에 제사상 차리러 굳이 가야만 하는 걸까. 우리 집은 원래부터 제사가 없는 집이다. 하물며 돌아가신 아빠는 엄마와 딸들에게 제사 비슷한 것도 지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대신 그날 가족들끼리 만난다면 맛있는 거 먹으면서 즐겁게 보내라고 했다. 내 아버지 제사도 안 드리는데 얼굴도 모르는 분의 제사에 일하지 않는다고 혼날 일인가.


“우리 아들도 철없어. 둘 다 똑같아. 너는 나이도 먹었으면서 어쩜 이렇게 철이 없냐, 40이나 되었으면서? 이건 아니지.”

나이 얘기를 반복하실 때마다 부정적으로 들리면서 가슴에 콕콕 박혔다. 또 나에게만 비난하는 건 아니라는 듯 두 번 정도 남편을 거론했고, 아버님은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말을 열거하셨다.

“내가 그렇게 막힌 사람은 아니거든.”

교양 있고 깨어있는 사람임을 강조하시면서 명절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번 설에는 미리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그걸 문제 삼으셨다. 시댁은 명절과 제사도 내게만 강요하며 사촌 며느리는 안 해도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경향으로 몰아갔다. 같은 시기에 결혼했는데 누구는 시키고 누구는 안 해도 되는 게 이치에 맞긴 한가? 게다가 그녀는 나와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가 뻔뻔한 건지 아니면 그녀처럼 못하는 내 상황이 화가 나서인지 마주치면 감정이 상했다. 이렇듯 집안 제사와 명절에 다녀온 이후에는 한동안 속이 힘들었다. 그런데 아버님은 설 전에 찾아갔던 것도 화가 나셨고, 할머님께 용돈과 떡을 사 갔던 것도 불만이셨다. 할머님의 용돈이 적었다는 뉘앙스와 더불어 어머님 아버님께 제사에 보태라고 용돈을 드리지 않은 것도 말씀하셨다. 정확하게 지적하시며 할머니께 드린 떡도 자그마한 것이었다고, 과일 바구니 정도는 들고 와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그때 매우 화가 났지만 참고 계셨다는 말도 보태셨다.

“남편이 설에 일한다고 하면 너라도 말리고 집에 가자고 해야지. 똑같이 구냐?”

“저희 집에도 안 갔어요.”

듣고 있다가 간신히 한 마디 했다.

“내가 가지 말랬냐? 너네 집 근처면서. 아니, 너 지금 너네 집은 안 갔는데 우리 집은 왔다 이 말이냐?”

아버님은 비아냥거리시며 설 전에 찾아뵌 것에 대해서 마구 쏟아내셨다.

“그리고, 너희가 그렇게 어렵니? 아니잖아?”

이 한마디로 아버님이 그동안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 남편에게 이 말을 하신 건 진짜 아니지 않나. 결혼하면서 시댁에서 도움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남편은 아버님 때문에 빚을 졌고 우린 그 빚을 갚느라 고생했다. 이러한 사정을 말해도 항상 못 들은 척하셨고 본인 하고 싶은 말만 하셨다. 그런데 정말 안 듣고 계셨던 거였다. 더구나 시댁에 가면 할머님께도 용돈을 드렸었는데 그날은 어머님께만 드렸던 것이다. 그러자 어머님이 할머님께도 일부 드리라고 하셔서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드리게 되었다. 아버님은 우리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다.

“너무 그렇게 돈돈돈하지 마라.”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으나 상처였다. '돈돈돈' 하지 말라니. 마치 여유 있는데도 내가 인색하게 구는 것으로 들렸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한참을 며느리의 도리를 운운하시며 나를 향한 비난은 쭉 이어졌다.


다음은 여행 이야기로 넘어갔다. 최근에 어머님과 아버님은 유럽 여행을 다녀오셨다. 나는 여행 하루 전날 밤에 전해 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잘 다녀오시라고 전화드렸다. 이게 또 화근이었다. 전화로 말만 하고 용돈을 안 드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른 집 며느리들은 말이야, 용돈을 말이야.”

매번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하신다. 해도 해도 너무하신다 싶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여행도 못 가는 형편인데….

“다른 집 며느리들은 전화도 수시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온단다.”

종종 하신 말씀이셨다. 다른 집 며느리들은 시댁에 자주 방문한다는 말은 앞전에도 듣던 얘기였지만 용돈이 추가되어 더 압박으로 느껴졌다. 친구들은 다들 며느리 자랑을 하는데 본인은 며느리가 안 챙겨줘서 자존심이 상하셨다는 뜻이었다.


이 밖에도 아버님은 자신의 딸도 하지 않는 걸 내게 바라시곤 했다. 그것은 바로 딸 같은 며느리. 아버님과 절연을 선언한 아가씨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는데 조금 알 것 같았다. 가부장적 사고만 고집하시고 자식들 입장은 헤아려주시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심장도 쿵쾅거렸다. 돈 문제와 나이 얘기, 행동 문제, 사람의 도리, 며느리의 도리까지. 머리가 아팠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뜨거웠다.


아버님과 통화 내용을 남편에게 전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잠시 있다가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한테 너무한 거 아니세요?”

“미친놈. 미친○○.”

전화를 받자마자 욕만 하시고 끊어버리셨다. 아마도 내게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신 것이었으리라. 마음은 남편에게 하시듯 그러하셨겠지. 바로 이틀 뒤에 남편의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는데 도저히 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아버님을 대면하기 힘들었다. 때마침 아가씨로부터 연락이 와서 남편은 이 상황을 전달했다. 아가씨는 아버님을 잘 알고 있어서 곧바로 이해했고 같이 고민해 주었다. 결국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뒤늦게 서러움이 복받쳤다.


아버님과 통화 이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처음부터 시댁에 가서 쭈구리처럼 있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시댁에 가면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가기 전부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다녀와서도 찜찜했는데 그랬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말을 안 하셨을 뿐 나를 못마땅해하셨기 때문이다. 환영받고 좋아해 주시는 게 느껴졌다면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을 부추겨서라도 자주자주 오라고 하셨다. 남편이 원래는 안 그랬는데 나 때문에 변했다는 말 안에는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왔다는 말을 돌려서 하신 것이다. 도대체 나를 어떤 대상으로 여기셨기에 이토록 가감 없이 말씀하실 수 있을까? 국어사전에도 며느리는 '아들의 아내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있다. 그러므로 며느리의 도리는 애초에 없는 말이다. 사위에게는 없는 며느리의 도리가 뭐길래. 또 누구의 기준이길래.


아버님 잣대에 맞는 며느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들의 결혼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으셨던 건 아버님의 욕심이다. 며느리는 아들과 사는 여자이며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다.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며 명령에 복종하는 상하 관계도 아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한 것이지 시부모님의 입맛에 맞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결혼한 사람이 아니다. 친정에서는 남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데 시댁에서는 내게 바라는 게 많다.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며느리가 된다 해도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 사람이다. 사위만 백년손님이 아니란 말이다. 며느리도 손님처럼 대해주셔야 한다. 시가에 가면 당연하게 설거지를 해야 하는 노예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눈치 봐야 하는 이상하고 부당한 것이 며느리의 자리가 아니다. 며느리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건 세상에 없다. 나도 우리 집에서 귀한 딸이다. 상한 감정이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다. 모두가 잘 지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상처 안 받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며느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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