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는 내향인으로 살기

가끔은 위장 외향인

by 봄여름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 중에는 집순이와 집돌이가 많다. 나도 집순이라 약속을 나가게 되면 만남은 즐겁지만 이상하게 피곤하다. 인파가 많은 곳은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지고 마음 안에서 ‘도망쳐!’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웬만하면 그런 곳은 피하지만 가끔 마주할 때면 신속하게 그 장소를 벗어난다. 타고난 성격을 처음부터 알기는 어렵지만 살면서 여러 경험으로 체득했다. 한때 사회적 분위기는 내항적 성격보다 외향적 성격이 더 좋다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새는 달라졌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걸 일반적으로는 이해하는 편이다.


집순이 중에서도 외향적 집순이와 내향적 집순이로 나뉜다. 집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바쁜 외향적 집순이와 정말 최소한만 움직이는 내향적 집순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외향적 집순이에 해당하며 집에서 바쁘게 보낸다. 뭔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집이 제일 좋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집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밖에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자리에 나가기도 한다. 물론 외출 전까지 나가야 한다는 귀찮음이 크지만 일단 나가면 누구보다 신나게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내향적인지 잘 몰라보기도 한다. 특히 MBTI를 얘기할 때 의아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는 I형이에요.”

“네? 무슨 소리예요?”

어쩌면 나는 사회화가 된 I와 E형을 넘나드는 경계형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확실한 I형임은 틀림없다.


예컨대 얼마 전에 약속이 두 개나 잡혔는데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남편의 지인과 만나는 자리였다. 상대방 쪽에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연락 주기로 했는데 약속 날이 다가와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나는 내심 속으로 좋아했다.

“여보, 연락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 건 어때?”

남편도 그러자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남편 또한 집돌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둘이 노는 걸 제일 재미있어한다. 어쨌든 상대방은 끝내 연락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약속은 취소되었다.


“아가씨랑 만나기로 한 날, 비가 온다는데 괜찮을까?”

나는 다음 약속도 취소되길 넌지시 바라며 말했다.

“그래? 얘기해 볼게.”

역시. 비가 오면 밖에 나가기 싫은 마음이 통했다. 아가씨는 나와 MBTI가 같을뿐더러 이전에도 날씨 때문에 약속을 몇 번 미룬 적이 있어서 예상할 수 있었다.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약속이 취소되면 왜 좋을까?

다행인 건지 주변에는 내향인이 꽤 많다. 친정 식구들도 성격이 비슷해서 우리끼리는 죽이 아주 잘 맞는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도 당연히 있다. 나의 외향인 친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불어도 약속을 절대 취소하지 않는다. 이 친구와는 약속을 미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밖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친구는 쉬는 날에도 집에만 있는 건 힘들어서 잠깐이라도 밖을 나갔다 온다. 나는 집에서도 쭉 있을 수 있는데.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서로 정반대 성격이지만 우리는 20년을 훌쩍 넘도록 우정을 유지해오고 있다.


타고나길 내향적 성격의 비중이 더 크지만 나는 외향적인 면도 갖고 있다. 이런 걸 '사회화된 내향인' 또는 '위장 외향인'이라고 한다. 어릴 적에는 앞에 나가서 주목받는 것도 좋아했다. 반장도 여러 번 했고, 연주하는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즐겨했다. 그러나 삶이란 것이 순탄하기만 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다 보니 성격이 점점 한쪽으로 기울었다. 언제부턴가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워졌고 '무대공포증'까지 찾아왔다. 극복해 보고자 노력하면 할수록 더 나빠지기만 했다. 어떤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식은땀이 흐르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들이 잇따랐다. 급기야 내가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주일마다 봉사자의 책임감으로 오랜 시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 왔었는데 결국에는 그만두었다. 극복이 전부가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인을 떨쳐내야 했다. 무대 공포증은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느껴지는 긴장감만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과 잘하고 싶은 욕심의 완벽주의 성격도 한몫 보탰다. 모든 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복잡한 감정들의 총체적 증상이었다. 나는 항상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은 척하면서 스스로를 더 궁지로 몰았던 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 하기 싫지만 해야만 했던 역할, 부담되는 것들로부터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깨닫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더러는 외향적으로 보여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향적인 모습이 진짜 나다. 친애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만남은 언제나 환영이다. 그대들과 있을 때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밝고, 수다쟁이가 된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은 늘 연결되어 있다. 다만 때에 따라서 약속이 취소되면 은근히 기분이 좋을 뿐이다. 외향인 내 친구는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향인만의 '특이함'이라고 해두면 어떨까.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스크린샷 2025-03-05 115132.png 무한도전 내향인 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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