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여름 Feb 21. 2024

불평등과 구겨진 마음

저도 우리 집에서는 공주로 컸다고요!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간을 읽고 있었다. 천천히 읽어가던 중에 비슷한 주제의 생각이 맞닿아있었다. 나 역시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는데 드디어 용기가 생겼다.

‘무거운 마음을 계속 품고 있지 말자.’ 써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명절 이후 내 마음은 구겨져 있었다. 사건은 비단 이번 설에만 있던 건 아니다. 쌓여오던 분노가 ‘못 참아, 안 참아!’가 돼버린 것이다. 명절 전날 남편이 출근하게 되어서 어머님께 전화했을 때 “진아는 와야 하는 거 아니니?”라고 하셨다. 아들이 안 오면 며느리는 혼자라도 와서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이다. 어머님도 딸이 있으면서 나한테는 영락없는 시어머니 입장이시다. 게다가 차도 없는데 왕복 택시를 타고서라도 오라는 걸까? 여기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남편의 집은 요즘 보기 드물게 제사와 차례를 꽤 거하게 지낸다. 원가족끼리도 아닌 가족 모두가 모인다. 제사 없는 집에서 자라온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친척들이 다 모이는 자리지만 음식은 여자들 몫으로 어머님과 큰 어머님이 여태 해오셨다. 집안의 여자가 많은데도 두 분이 도맡으셨다. 문제는 어머님이 묘하게 자신의 역할을 내게도 강요하신다는 거다. 큰 어머님은 자기 며느리가 제사에 오지 않던, 명절에 오지 않던, 하물며 명절 전날 음식 준비에 오지 않던 아무렇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나를 부리신다. 이름도 아닌 “며느리, 이것 좀.”이라고 하시면서.


시댁은 혼인의 나이가 늦은 편이다. 남편의 결혼이 첫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남편도 결혼할 때 혼기가 빠른 나이가 아니었는데 아직도 위아래 줄줄이 시집 장가를 안 갔다. 그랬기에 오랜만에 집안의 경사가 바로 우리의 결혼이었다. 결혼식 당일에 얼굴이 사뭇 어두운 사촌 형을 처음 만났다. 미리 인사하는 자리에도 볼 수 없었던 형은 우리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그날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고 했다. 갑자기 진행되는 결혼에 촉이 왔다. 형은 속도위반이 맞았고, 나는 갓 결혼한 새댁이었지만 어른들은 형님과 형님의 여자에게만 “새신랑, 새 신부.”라고 하셨다. 우리가 10월에 결혼하고 사촌 형이 1월에 결혼해서 겨우 3개월 차이밖에 안 나는 결혼이었다. 그런데 부엌에서 앞치마를 매고 있는 나는 점점 당연한 사람이 되었고, 그분은 임신 초기부터 시작으로 쭉 숟가락 하나 놓지 않고 그냥 내가 하는 걸 쳐다만 본다. 당연시되고 있는 상황에 화가 계속 쌓이기 시작했고 어른들의 차별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특히 이번 설은 '설움' 폭발이었다. 설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서두르며 집을 나섰다. 항상 우리 부부만 1등으로 도착한다. 9시에 제사면 다들 10시가 가까워서야 모인다. 시댁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싸한 분위기. 앉아계신 큰 아버님과 할머님께 인사를 하는 동시에 앞치마를 둘렀다. 부엌으로 가니 이번에 명절 전날 안 와서인지 어머님이 “이거 너 안 주려다가 주는 거야.”라며 약간의 뉘앙스를 풍기시며 참기름을 싸주셨다. ‘안 주셔도 괜찮아요.’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어머님은 내가 입고 있던 앞치마를 빤히 보시더니 “너는 그런 앞치마 어디서 사니?” 하셨다. ‘아, 이건 앞치마 사 오라는 말?’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네 어머님 다음번에 사다 드릴게요. 어떤 색이 좋으세요?”했더니 옆에 계신 큰 어머님도 자기 것을 말씀하셨다. 셋이 나란히 같은 앞치마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니 썩 달갑지 않았다. 어머님과 큰 어머님의 임무가 나에게도 묶이는 기분이랄까. 다음부터 앞치마를 하지 않거나 다른 걸 챙겨갈 것이다.


준비된 음식을 차례상에 나르고 거의 끝나가니까 주인공이 등장했다. 추석에도 안 왔던 사촌 형의 그분과 아기를 처음 봤다. 아기를 안고 들어오는 사촌 형과 인사했고 그분은 나와 눈 한번 안 마주치고 곧바로 안방으로 가서 어른들과 앉아있었다. 인사조차 없던 그분은 차례 시간에 잠깐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아기랑만 있었다. 두 번으로 나누어 지내는 차례가 끝나자마자 그분은 사촌 형을 쏘아보았고, 세배 후 밥상 차리는 걸 보면서 자기 친정에 가겠다고 하며 가버렸다. 결혼하고 매번 이런 식이었다. 가면서도 내게는 눈인사 한 번 하지 않는 그분을 보며 화도 안 났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 참. (내가 한 살 언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마중까지 하셨다.


가는 모습을 보니 작년 증조할아버지 제사가 떠올랐다. 나는 생리통이 심한 편이어서 집에서 쉬고 싶었다. 남편이 어머님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임신한 그분도 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오라는 것이지 않은가. 결국 갔고 도착하자마자 “너희는 준비 다 끝나니까 오니?” 하셔서 잘못한 게 없는데도 기가 죽었다. 그리고 그분은 안 오신다고 했다. 큰 어머님이 내 팔을 툭 치며 “임신했으니까. 응?” 하셨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 내 쪽으로 오시더니 “너는 소식 없어?” 하셨다. 결혼하고 3개월 조금 지났을 때였다. “네….” 죄지은 것 없이 작아졌던 날이다. 어머님은 내게 좋게 위로해 주셨으나 이번 설에 차례 지내는 동안 사촌 형의 그분과 아기와 함께 있으셨다. 말씀과 마음이 다르신 것 같아서 섭섭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앞으로도 내내 있을 명절 풍경이겠지. 차례를 지내는 동안 나는 문밖에서 부엌데기가 되어 외롭고 괴롭고 울고 싶었다. 


처음에는 힘든 걸 몰라주는 남편이 정말 미웠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효를 대신 넘기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혼 초에 부부 상담을 통해서 선생님이 남편에게 많이 설명해 주시며 차츰 이 상황을 알게 되었고 이젠 내 편을 들어준다. 가부장 제도가 심한 시댁인데 이상하게 그분만 특별 대접이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 어른들은 그러려니 대해주신다. 새 식구였던 내게는 한 번도 앉아있어라, 쉬어라 말 한마디 없이 처음부터 당연하게 부엌으로 향하게 하셨다.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던 건 이러한 불평등이 가장 컸다. 누구는 꼭 하라고 강요받고, 누구는 편히 있다가는 손님이다. 굳이 따지고 보면 그분이 형님의 아내니까 내가 더 손아래 동서가 될 텐데 말이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제사 없는 집에서 컸고, 몸이 약해서 친정에서는 지금까지 일을 안 시키고 못 하게 해서 진짜 공주처럼 살아왔다. 체격도 작고 팔 힘도 없는데 지난번에 시댁에서는 큰 곰탕 냄비를 나보고 옮기라고도 했다. (나와는 반대로 그분은 체격도 건장한데.) 


설날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이 먹은 밥상을 치우는 일과 산더미의 설거지 및 잡다한 일이 끝나고 산소로 향했다. 산소까지 갔다가 내려가서 다시 점심을 차린다는데 이것만은 못 한다고 남편과 미리 약속하고 친정을 가기로 했다. 할 일 다 하고 가는데도 그분과 다르게 뭔가 기분 좋게 보내주시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찜찜했다. 결국 친정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엄마 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니 내가 뭘 하다 온 건지 서럽고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 뒤로 일주일 넘도록 끙끙 앓았고 더 이상 똑같이 반복하고 싶지 않다.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 바틀비가 하는 말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를 크게 소리치고 싶다.


명절의 강요는 없어져야 한다. 불편한 시간은 1분 1초도 길게만 느껴지기 마련이건만 이번 설날은 몹시도 힘들었다. 평소에 시댁에서 ‘분위기 메이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더는 그럴 힘이 없다. 입을 닫고 할 일만 묵묵히 하다 오는 게 훨씬 낫다. 명절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막막한데 분명히 답은 있을 것이다. 당장에 해야 하는 건 일단 구겨진 내 마음을 펴는 일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드라마 '며느라기' 중에서




책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결혼의 의미




작가의 이전글 곧 인생의 황금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