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무용한 것을 사랑해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무용한 아름다움이었다

by 봄여름


세상은 흔히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쓸모없음’이 오히려 가장 큰 쓸모가 되기도 한다. 돈이 되는 것들만 인정받고 주목받는 현실은 가끔 씁쓸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내가 흔히 말하는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음악을 배울 때가 그랬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배운다는 건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꽤 오랫동안 배웠고, 나중에는 작곡까지 배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음악을 배우는 시간은 언제나 가장 흥미로웠다. 같은 예술 계통인 미술은 도무지 재미가 없었지만, 음악은 달랐다. 어렵다는 기분보다 하나씩 알아갈수록 악보가 익숙해지고, 연주가 좋아질수록 더 재미있어졌다. 나에게 음악은 그 시절 가장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는 배움이었다. 그 밖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었고, 글쓰기도 좋아했다. 글짓기 과외도 무척 재미있어했다. 만약 시간을 돌려 다시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도, 나는 같은 걸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항상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음악을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치며 깨달은 건 투자한 만큼 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배우는 일만큼 가르치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결국 그만두었지만, 나는 여전히 음악을 좋아한다. 이제는 듣는 게 가장 좋다. 수없이 갈고닦은 연습 끝에 완성된 훌륭한 연주는, 악기를 다뤄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깊고 묵직한 울림이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쓴다고 해서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요즘은 글쓰기 플랫폼도 많아졌고, 마음만 먹으면 내 글을 어디에든 올릴 수 있다. 그래서일까, 글쓰기는 누구나 한다는 생각이 생겨난 듯하다.


한 번은 내가 글을 쓴다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너도?’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주변에도 글 쓴다고 브런치 하는 사람 몇 있어. 근데 다들 글 별로 못 쓰던데?”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이었을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러는 너는 한 번이라도 써 봤니?’라는 말이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누군가가 진심을 담아 대하는 것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면, 으레 거리감을 두고 싶다. 내게 소중한 것이 있는 것처럼, 다른 이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을 텐데, 그걸 깔보는 듯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태도를 마주할 때면,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딘가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람이었던 적은 없었을까. 아직 떠오르는 일화는 없지만, 만일 있다면 늦었더라도 꼭 사과하고 싶다.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김희성 역 (배우 변요한)

이 대사는 변함없이 종종 떠오른다. 무용한 것을 사랑하는 나에게, 마치 위로처럼 다가오는 말이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쓴 양다솔 작가도 이렇게 말했다.

“책에서 무용한 것을 사랑한다고 표현했는데, 무용하지 않아져서 조금 무색해지기는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즐겁습니다. 하하.”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무용한 일이 가장 즐거운데, 최고봉은 글쓰기.”

과거엔 쓸모없다고 여겼던 감정, 생각, 경험들이 이제는 글의 소재가 되고, 작가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것’이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유쾌한 소회였다. 나 역시 공감했다. 언젠가 무용하다고 여긴 것들이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나에게도 온전히 와닿는 말이었다.


살면서 꼭 유용하다고 느껴지는 것들만 해야 할까. 유용함과 무용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앞으로도 남들이 무용하다고 여길지라도, 나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하며 삶을 가꾸고 싶다. 둘러보면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속에, 인생의 보석 같은 순간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무용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얼마든지 해도 괜찮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림에도 관심이 생겨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은 음악회보다 미술 관람을 더 자주 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무용한 것들’의 목록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나를 채우는 일이라면, 나는 언제까지나 무용한 것을 사랑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무용한 것들


keyword
이전 03화하기 싫은 일을 줄이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