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얻은 뜻밖의 위로와 나의 작은 선택들
얼마 전, 영화 '카모메 식당'을 다시 보게 됐다. 내가 달라진 걸까? 오랜만에 본 그 영화는 예전만큼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한 장면에 눈길이 멈췄다. 식당 주인과 손님의 짧은 대화였다.
"좋아 보여요.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거."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
이 담담한 대사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깊이 마음에 남았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삶'이라니.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내면의 소리일 것이다. 듣고 싶던 말이거나, 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이 문장으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에 더 공감했을까? 아마 현재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사랑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나는 이 후자에 더 끌린다.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다는 건 배려에서 비롯된 행동이니까. 해가 바뀔수록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도 나를 위해 하기 싫은 걸 안 하고 싶다. 하기 싫은 일을 피하는 것이, 좋아하는 일을 모두 해내는 것보다 더 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하기 싫은 일을 차츰 줄일 수 있다. 나는 마음이 지치거나 속이 상하면 몸까지 아픈 사람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일부터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고, 이 작은 실천은 인간관계, 옷차림 등 내 삶의 여러 영역으로 번져갔다. 예전엔 공통점이 많았던 사람들과도 서서히 멀어졌다. 닮아 있던 삶이 시간이 흐르며 각자에게 맞는 방향과 환경으로 흩어지는 걸 느낀다. 이제는 자연스레 멀어진 관계들이 오히려 편하다. 나도 많이 달라졌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외출할 때 운동화를 신는 것이 당연해지면서, 옷차림도 점점 더 캐주얼해졌다. 누군가는 옷장에 정장류가 늘었겠지만, 내 옷장엔 청바지가 더 많아졌다. 예전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블라우스나 원피스를 샀는데, 지금은 무조건 ‘편안함’이 나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모자에 대한 집착이 늘면서 또 다른 과소비가 생기기도 했다. 이맘때 나의 옷차림은 에코백이나 가벼운 가방에 운동화, 그리고 모자를 곁들인 모습이다.
명품백도 한 번 사보니, 하나로는 만족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걸 반복해 들고나가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다. 가방이 나를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물욕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명품백 하나 살 돈으로, 작고 귀여운 물건들을 사부작사부작 모으는 중이다. ‘이래야 할 것 같다’는 세상의 기대에서 약간 벗어나도 괜찮은 삶이 좋다. 이런 것도,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삶의 일환일까?
매일이 비슷해 보여도, 정말로 똑같은 날은 없다. 지루해 보일지라도,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이 좋다. 그래서 더더욱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살고 싶진 않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지치는 인간관계도, 큰 꿈을 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도 더 이상은 그만두고 싶다.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다른 기준으로 다가오니까.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삶의 중심엔 ‘나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기에, 그만큼 내 편은 내가 되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더라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참아내며 살고 싶진 않다. 그 다짐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늘을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진짜 행복의 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