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마음, 조용한 하루를 기록하다
빈 문서를 띄워놓고, 깜빡이는 커서처럼 눈만 깜빡인다.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데… 꼭 써야 할 사람도 아닌 내가, 어느새 스스로를 ‘써야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왜냐하면 나는,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꾸만 쓰게 된다. 하루치의 마음을 한 문장에 담고 나면, 그제야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은 정리된 것 같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글이어도 내게는 소중하다. 일상을 나눌 사람이 많지 않기에 글쓰기는 유일한 통로다.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내가 먼저 말을 걸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이 행위의 매력이다.
어릴 적 나는 조용히 혼자 노는 아이였던 것 같다. 사회성이 자라나는 시기엔 또래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정작 즐겁다는 감정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울려야 하니까, 그냥 어울렸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방학이 되면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않았다. 학교가 멀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혼자인 시간이 더 좋았다. 나는 학교생활에 필요한 친구가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진짜 마음이 맞는 친구를 못 만나서였을까. 여전히 잘 맞는 친구를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마도 비슷한 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외롭지는 않다. 사람들과 어울려 에너지를 얻는 편이 아니니까. 오히려 마음이 잘 맞는 가족이 내겐 가장 편한 친구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우리 둘 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우린 둘이 노는 게 제일 재밌어.”라는 말을 그가 자주 한다. (정말 자주 말한다.)
보호자가 내향적이면 강아지도 닮는다. 우리 강아지 사랑이도 그렇다. 가족 외에는 다 싫어한다. 좋아하는 사람만 반기고, 낯선 이에게는 질색팔색이다. 누굴 탓하랴. 나를 닮은 것을. 그래도 그 성격을 존중한다. 누구보다 잘 아니까.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 그게 우리 사이에서는 가능하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이것저것 생각만 하다가, 정작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이 허다하다. 그걸 사색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매일 고민하게 된다. 오늘은 무엇을 가장 오래 떠올렸는지. 문득 ‘완벽한 하루’라는 말에 마음이 멈췄다. 별일 없는 날이었지만, 어쩐지 완벽하게 느껴졌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도 결국 같은 일상의 반복이지 않은가. 나도 그랬다. 책을 읽고, 컴퓨터 앞에 앉아 끄적였고, 상호대차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제법 선선해진 날씨와 가을 냄새에 코끝이 간질거렸다. 계절이 바뀌는 감촉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사랑이와 산책을 나갔다. 기분이 좋은지 연신 멈추지 않고 달리는 사랑이를 보며 나도 같이 뛰었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생기가 돌고, 덩달아 많이 움직여서인지 땀이 날 정도였다. 운동까지 시켜주는 기특한 강아지다. 집에 돌아와 사랑이의 발을 닦고 빗질을 마치면 ‘주부 모드’로 전환된다. 요리 경연대회처럼 냄비와 프라이팬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저녁을 준비했다. 간단히 차려도 시간은 제법 걸리고, 식사 후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원래는 올빼미형이지만, 남편과 사랑이는 일찍 자는 편이라 자연스레 그들의 생활 패턴에 맞추게 됐다. 그래서 매번, 누워서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두 시간은 기본이다.
진짜 별거 없는 하루다. 그런데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무탈한 하루에서 느껴지는 안도감 때문이다. 나는 그런 무난한 날들 속에서 안정감을 자주 느낀다. 그래서 그런 날들이 내게는 좋은 날이다. 가끔은 너무 욕심 없이 사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아니다, 그냥 해탈한 사람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웃을 수 있고, 안온한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 다채롭고 특별한 하루가 가득한 경우도 많지만, 나는 그런 날보다 조금 심심한 하루에 더 끌린다. 큰 요동 없는 마음이 주는, 작지만 확실한 안정감. 어쩌면 자기 성격을 닮은 하루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일상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나를 닮은 하루를 조용히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