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하면, 그게 가장 명절다운 법이니까
이번 추석은 다른 때보다 더 길었다. 긴 연휴 덕분에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 역시 그 흐름에 합류하기로 했다. 올해는 명절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더 답답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역할과 기대,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무게감이 밀려왔다.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늘 일정한 자리에 있었지만, 이번엔 그 자리를 비워보기로 했다. 명절을 보내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 모양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나를 지키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까운 사이인 큰이모는 며느리가 친구들과 독일 여행을 간다고 하자, 흔쾌히 “그러렴.” 하셨다. 추석이 끝나고 돌아온다는 그 언니가 괜히 부러웠다. 우리 이모는 시어머니이면서도 기본적으로 굉장히 쿨한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해 자주 친구들이나 가족, 동생들과 떠난다. 그래서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 다녀와.”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모의 그런 태도를 보며 나도 조금은 쿨해지기로 했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도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챙길 줄 아는 사람. 이번 명절은 그렇게 보내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비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 편도 아니고, 그 좁은 공간이 내겐 썩 편한 곳이 아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긴 하지만, 장시간 비행을 감수할 만큼의 열정은 아직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내 방식대로, 국내 여행을 택했다. 국내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짐 싸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건 꼭 챙겨야 해!’ 하는 물건들이 늘어나면 가방은 금세 불어난다. 결국 짐 싸는 일부터가 큰 스트레스다. 떠나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가방 앞에 앉으면 또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 언제나 그랬듯, 출발 전이 가장 복잡한 법이니까. 막상 길 위에 오르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경주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도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경주를 무척 사랑했다. 그는 그곳을 “상처받고 지친 마음을 끌어안아 주는 도시”라고 표현했는데,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어릴 적 가족여행 중에서도 경주는 손에 꼽을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용한 골목, 낡은 돌담, 느릿한 시간의 흐름.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던 순간, 라이브 연주의 소리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마음이 허전할 때면 늘 그런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좋을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경주의 공기와 시간, 그리고 고요한 풍경이 다시 나를 다정하게 감싸줄 것만 같았다.
이제부터 명절은 나에게도 쉼이 되면 좋겠다. ‘가족을 위한 시간’이라는 말속에, 나 자신도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챙기듯 나를 챙기고, 모두를 위한 명절보다 나를 위한 명절도 가능하다는 걸 믿기로 했다. 이럴 때야말로 떠나야겠다고, 마음속에서 속삭이듯 다짐했다. 떠남으로써 비워내는 것, 그것도 내 삶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이니까.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막상 명절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토록 좋을 줄이야. 떠나기 직전까지 짐을 다 싸지 못해 분주했지만, 마음만은 이미 목적지에 닿아 있었다. 창문 밖으로 부는 바람도 선선했다. ‘명절답게 보내는 법’이 따로 있을까.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가장 명절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추석은, 그렇게 나를 챙기기로 한 내 마음속에 조용한 쉼표 하나를 남기고 지나갔다. 떠나보자. 이번엔, 진짜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