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금 더 알게 된 날
세상에는 노래방을 사랑하는 사람과, 노래방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매일같이 노래방을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흥미가 사라졌다. 사실 나도 한때는 꽤 꾀꼬리였지만, 그건 정말 ‘왕년 이야기’다. 무엇보다 세상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이제는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좋아졌다. 그럼에도 최근 자꾸만 코인 노래방이 궁금해졌다.
사실 노래방을 꺼리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갔던 기억 때문이다.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내 취향의 노래를 고른다는 게 괜히 뻘쭘했다. 하지만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전혀 달랐다. 선곡도 자연스럽고, 웃으며 같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혼자는 어떨까.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찾아갈 만큼 간절하진 않았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정도로만 남겨 두었다.
집순이의 외출은 언제나 그렇듯, 나온 김에 뽕을 뽑는 일정으로 이어진다. 볼일을 마친 뒤 언니와 냉면을 먹었다. 몇 년 전 여름마다 함께 냉면집을 전전하던 시절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문득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때 갑자기 코인 노래방이 떠올랐다.
“언니, 나 예전부터 코인 노래방이 너무 궁금했어. 가보자.”
“좋지!”
언니는 흔쾌히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근처에 있던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방을 고르고, 몇 곡을 부를지 정하는 순간부터 모든 게 새로웠다. 둘 다 오래 부르는 타입이 아니니 가장 짧은 코스로 — 2천 원, 여섯 곡. 방 안은 두 사람이 앉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좁지만 아늑했고, 조명이 따뜻하게 번졌다. 노래책을 펼쳤지만 막상 부르려니 막막했다. 언니가 먼저 골랐다. 첫 곡은 언니의 추억 속 애창곡,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불렀다.
무선 마이크는 생각보다 가볍고 손에 착 감겼다. 리듬을 타며 신나게 부르다 보니 금세 끝나고, 다음 곡이 문제였다.
“언니, 우리 뭐 부를까?”
둘 다 눈만 꿈뻑거리다 결국 발라드, 또 발라드. 연달아 세 곡쯤 부르니 이윽고 흥이 식었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god의〈애수〉로 분위기를 바꿨다. 추억이 섞인 멜로디에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언제나 그렇듯, 2NE1의〈내가 제일 잘 나가〉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여섯 곡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이만큼만 부르니까 딱 좋았다. 가수들의 가창력에 새삼 존경을 표하며 노래방을 나왔다. 조금 부른 것뿐인데, 노래로 달궈진 목을 아이스크림으로 식혔다. 별거 아닌데도 미션을 하나 완수한 듯했다.
‘드디어 나도 코인 노래방 다녀왔다!’
노래방 후유증인지, 집으로 돌아오니 이상하게 또 가고 싶어졌다. 엄마도 모시고 가야겠다. 10대, 20대, 30대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지만 이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 좋은 곳이나 맛있는 걸 보면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음번에는 꼭 엄마랑 언니랑 함께 다녀와야지.
남편은 노래방을 질색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종종 ‘목욕탕 가수’가 된다. 그러니까 이번엔 남편에게도 제안해 볼까 싶다. 연애할 땐 늘 카페나 서점 데이트가 전부였으니, 이런 새로운 시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작은 변화가 일상에 새로움을 불러오니까.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오늘 코인 노래방 갔다 왔어.”
“집순이가 웬일로 노래방을?”
그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더니 뜻밖에 이런 말도 했다.
“다음엔 나도 같이 갈래.”
나는 그 말이 더 놀라웠다. 역시 사람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절대 안 갈 사람’이라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다. 묻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아무튼, 어쩌다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나는 이미 코인 노래방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재밌네? 왜 이제 알았지? 나, 노래방 좋아하네?’
어쩌면 나도 나를 잘 몰랐던 걸지도.
결국, 작고 귀여운 즐거움 하나를 더 발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