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를 향한 ‘티 내고 싶은’ 마음
짜증이 밀려오거나 마음이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귀여운 것의 힘을 빌린다.
나에게는 작은 묘약이 있다. 이미 우리 집에는 사랑스러운 강아지 사랑이가 살고 있지만, 영상으로 다른 동물 친구들을 보는 일은 또 다른 위안이다. 자주 보다 보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챙겨 보여주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턴가 나는 동물 친구들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얻고 있다. 귀여운 존재들은 정말 무해하니까.
얼마 전 그런 날이 있었다. 마음이 이유 없이 가라앉고, 기분을 끌어올리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판다를 본다. 에버랜드 ‘바오패밀리’ 영상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귀여움에 흠뻑 빠져 순간의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원래도 자극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더욱 멀리하게 된다. 나는 그런 도파민 말고, 순수하고 귀여운 도파민이 좋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덕질’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의 덕질은 판다 푸바오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눈에 띈 순간, 마치 ‘뿅!’ 하고 사랑에 빠졌다고 해야 할까. 그 귀여움에 절로 웃음 짓게 되면서 매일 영상을 찾아보았다. 직접 만나고 싶어서 에버랜드 ‘판다월드’로 향했던 그 두근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살면서 팬심으로 좋아해 본 적도, 직접 찾아가 본 적도 없었던 나다. 그런 나를 바꾸어 놓다니. 그렇게 나는 열혈 ‘푸덕이’가 되어갔다.
팬이라면 응원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도 있다. 바로 바오패밀리 응원봉. 판다들을 만나 흔들 일은 없지만,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소장각’이라는 말이 꼭 맞다. 덕질이 시작되자 굿즈는 나날이 늘어갔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하나둘 쌓일수록 나의 행복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평소 오프라인 매장에서 즉흥적인 소비는 잘하지 않던 나지만, ‘판다월드 굿즈샵’만큼은 예외였다. 눈이 반짝이며 ‘이번엔 뭘 살까?’ 하고 들뜬 마음으로 구경했다. 나는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지만, 한 번 열리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릴 적에도 인형이 아무리 많아도 애착 인형만 고집했으니까. 새 인형을 사줘도 그 인형이 언제나 1순위였다.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때부터 내 가방에는 푸바오를 닮은 무언가가 꼭 달려 있다. 아무것도 달리지 않은 가방은 왠지 휑하게 느껴진다. 푸바오 얼굴이 그려진 아크릴 키링을 달고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키링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주변에도 자연스레 권하게 되었고, 이제는 엄마와 언니도 각자 가방에 푸바오 키링을 달고 다닌다. 선물한 키링을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뿌듯하다.
그리고 어제, 재활용을 버리고 난 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황급히 달려오는 아주머니를 보고 ‘열림’ 버튼을 눌러드렸다.
“고마워요.”
짧지만 따뜻한 인사였다. 순간 아주머니의 가방에 달린 키링이 눈에 들어왔다. 임영웅 얼굴이 새겨진 아크릴 키링과 파란색 팬클럽 키링들은 이름하여 ‘영웅시대’의 상징이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아, 아주머니도 나처럼 덕후셨네. 나는 푸덕이, 아주머니는 영웅시대.’
내릴 때 보니 같은 층이었다. 헤어스타일이 달라져 미처 몰랐던 옆집 아주머니였다. 어물쩍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와 혼자 웃음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은근하게 티 내고 다니는 마음은 어쩐지 귀엽고 예쁘다. 나에게 푸바오 키링이 소중하듯, 아주머니에게는 임영웅 키링이 그런 의미일 것이다. 팬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응원하고, 그 마음으로 위로받는 일. 그건 해본 사람만 안다. 사랑하면 티가 나고, 티 내고 싶은 마음은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도 나는 가방에 달린 푸바오 키링을 보며 미소 짓는다. 작은 귀여움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귀여운 건, 언제나 무해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