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이 줄어든 자리에서, 비로소 나를 바라본다.
예전만큼 크리스마스가 흥이 나지 않는다. 아니, 성탄절 기분을 억지로 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고 이 날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전에는 환상이 너무 컸고, 지금은 그렇지 않을 뿐이다. 요즘의 성탄 분위기는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찾아가야만 겨우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 되었으니까. 내가 어릴 적, 이 무렵의 12월은 세상이 온통 크리스마스였다.
어디서든 캐럴이 들리던 때가 있었다.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길거리에 노래가 울려 퍼지던, 그야말로 낭만의 시대였다. 12월이 되면 라디오와 상점 스피커는 약속이라도 한 듯 ‘Last Christmas’를 틀어주었다. 그때 나에게 캐럴은 배경 음악이 아니라 공기였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소담스럽게 눈이 날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12월은 기대와 설렘으로 두근거렸고, 성탄절은 한 해 중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그 반짝임은 더해졌다. 지금은 교회와 거리 두기 중이지만 말이다.
종교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 보니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무종교의 삶을 지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라는 세계에서 멀어질수록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한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어왔지만, 그것이 꼭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정확하게는 신앙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졌다고 할 수 있다. 믿던 신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불편했다. 마음속에서 ‘도망쳐!’라는 경고음이 울릴 때가 있었고, 그 신호를 무시할수록 결과가 좋지 않았다. 심경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자유를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다.
마음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조용히 드러난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최근 들어 아주 드물게 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장르가 바뀐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옛날 영화는 여전히 로맨틱한 이야기가 좋지만, 새로운 작품에서는 그런 감정이 잘 올라오지 않는다. 그때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섬세한 정서가 요즘 스타일에는 내게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이 무뎌진 것이 아니라, 취향이 방향을 바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신 스릴러 장르에 흥미가 생겼다. 원래 좋아하던 로맨스를 잃고 싶지 않아 스스로에게 계속 변한 게 아니라고 해명하곤 한다. 아끼는 감수성이니까.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마음이 닫히는 순간 단번에 돌아서는 태도다. 한 번 연 마음은 쉽게 닫히지 않지만, 닫기로 결심한 마음은 망설이지 않는다. 어떤 건 변하고, 어떤 건 남는다. 단지 모양이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도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늘 같을 수 있을까. 이따금 다른 시절의 나와 지금을 비교하게 되기도 한다.
‘그땐 그런 게 좋았는데…….’
나도 주변 사람들도 불과 몇 해 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런 생각이 스치는 걸 보니 연말이 오긴 왔나 보다. 들뜨지는 않지만, 감사함이 먼저 떠오르는 11월의 마무리였다. 12월은 올해의 마지막 남은 한 달이어서 붙잡고 싶기도 하고, 잘 보내주고 싶기도 하다. 새해 계획을 세우기보다 먼저 올해를 돌아본다.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우리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었음이 가장 감사하다. 내게 무엇보다 큰 축복은 언제나 그러했다.
이제 곳곳의 낭만의 캐럴은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는 행복은 오히려 더 선명하다. 그 선명함을 바탕으로 새해에는 조금은 욕심을 부리는 어른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나를 위한 욕심과 나를 믿어주는 마음. 오롯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번 12월은 충분히 따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