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한가운데에서 음악이 나를 다시 앉히는 방식
온몸이 무겁고 힘이 빠질 때가 있다. 번아웃. 드물게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자주 찾아오기도 하는 존재. 그럴 때면 나는 습관처럼 책을 든다. 읽히지 않아도,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도 그냥 책을 잡고 있게 된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읽히는 문장이 생기면, 그 문장 하나 때문에 마음이 미세하게 풀린다. 역시 나에게 책은 가장 다정한 존재다.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긋기도 하고, 아니면 흘려보내듯 쭉 읽어가기만 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조금 안정시킨다.
그렇지만 책으로도 버티지 못하는 날이 있다. 아무리 읽어도 계속 제자리에 걸려 있는 순간. 결국 나는 음악을 찾는다. 사실 요즘에는 음악을 자주 듣지 않는다. 오래된 플레이리스트에 질려버린 탓인지, 예전만큼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때는 클래식 음악이 떠오른다.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음악. 들으면 들을수록 ‘역시는 역시구나’ 싶어지는 음악들.
물론 클래식이라고 해서 새로운 곡을 찾는 건 아니다. 익숙한 곡부터 듣는다. 다만 그날의 기분 결에 따라 선택하는 곡이 달라질 뿐이다. 지금처럼 무기력하고 온몸에 힘이 빠질 때면, 나는 꼭 찾는 곡이 있다.
차이콥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B단조 Op.23
(Pyotr Ilyich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주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연주로 듣는다.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웅장해진다. 누군가 가볍게 “힘내”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과는 다르다. 이 음악은 터무니없는 위로가 아니라, 단단한 위로로 다가온다. 초반의 호른이 문을 열면, 현악기가 파도처럼 몰려오고, 곧이어 피아노가 힘 있게 내려친다. 그 순간 마음이 한꺼번에 끌어올려진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며, 어느새 나는 온전히 음악 속으로 들어간다.
피아노가 홀로 독주를 이어가는 지점에 이르면, 말로는 닿을 수 없던 영역을 음악이 건드린다. 광야를 헤매다 마침내 길을 찾은 사람처럼, 막다른 벽 앞에서 갑자기 문이 생긴 것처럼, 힘이 나기 시작한다. 누구의 손길도 없이, 음악만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기분. 그게 이 곡이 주는 위로다.
연주 영상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고맙다. 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연주자의 손끝까지 바라볼 수 있다. 그때 이 음악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감정을 통과해 만들어졌는지를 실감한다. 이 곡이 더 이상 과거의 음악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도착한 위로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미뤄두었던 일을 시작할 힘. 그것이 바로 연주를 들은 뒤 나에게 남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번아웃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할 때 사람의 말보다 음악을 먼저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말은 닿지 못하는 곳까지, 음악은 조용히 데려다 놓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