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도쿄』를 읽고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남들은 설렌다는 여행이 왜 내게는 짐 싸기 단계부터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질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김신회 작가의 신작 『내향인의 도쿄』를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해온 여행 대부분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새로운 곳에 가는 일이 설레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짐을 바리바리 싸느라, 정작 그 무거운 짐 때문에 여행 가기가 싫어질 정도일까. 낯선 곳에 대한 기대보다 익숙한 곳의 편안함을 더 선호하는 내 성향을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여행이 아주 싫은 건 아니다. 국밥을 좋아한다고 매일 국밥만 먹으면 물리듯, 익숙한 일상 사이사이 새로움을 주는 장소는 나에게도 분명 즐거움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나 같은 내향인은 어떤 여행을 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혼자 여행해 본 적은 없지만 마음 한편에 품어온 바람이었기에, 이 책을 통해 그 갈증을 대리 경험으로나마 해소하고 싶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팬이었지만, 내게 김신회 작가는 특별한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하다. 생애 첫 글쓰기 수업이었고, 처음으로 자발적인 용기를 내어 찾아간 북토크도 그녀의 자리였다. 지독한 내향인인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책 속의 글을 나누고, 질문은 끝내 하지 못했지만 사인 줄에 서서 가슴 졸이던 기억이 선명하다. 작가님이 나를 알아볼까 떨렸는데, 감사하게도 한눈에 알아봐 주셨다. 이후로도 몇 차례 수업을 더 들으며 나는 홀로 쓰던 글에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글을 나눈다는 일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다른 수업을 경험할수록 김신회 작가님의 수업이 왜 좋았는지를 더 또렷하게 체감한다. 작가님의 책 대부분을 읽어온 덕분에 이번 책의 문체가 미묘하게 변화한 결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작가님의 글도 더 깊어지고 있다는 그 기분 좋은 동질감이 좋았다.
한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글에는 저마다의 성격이 묻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내 글에도 나의 성격이 묻어날까. 이번에도 책 속에서 나와 결이 맞는 부분을 만날 때마다 인덱스를 붙였다. 유난히 빽빽하게 붙은 인덱스를 보며 내 마음이 이 문장들에 얼마나 깊이 머물렀는지를 확인한다. 소중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는 내내 독서는 참 즐거웠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퍼펙트 데이즈>처럼 고요한 도쿄의 풍경이 눈앞에 일렁였다. 다음 여행에서는 나도 도쿄에 가볼까 하는 마음이 움직인다. 책 속에 등장하는, 그리고 엽서 속에 담긴 디저트 ‘안미츠’의 맛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여행을 더 열렬히 좋아하게 되었다기보다, 나에게 맞는 ‘여행의 얼굴’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억지로 외향적인 여행자가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독서였다.
개와 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나'는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 아닌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개를 돌보며 나를 돌보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어떤 관계를 맺든 불안형과 회피형으로 일관하던 내가 개와의 관계에서는 안정형이 되었고, 단단해진 마음은 삶에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p.71
작가님과 그의 강아지 풋콩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초보 보호자가 되었을 때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 『가벼운 책임』을 통해, 나 역시 처음 강아지를 키우던 시절 그 문장들을 끌어안고 읽었다. 이후로도 작가님의 글 속에 등장하는 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처럼 읽힌다. 나 또한 같은 마음으로, 강아지와 함께 살며 조금씩 안정형의 사람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확고한 취향은 더 이상 나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게 됐다. 오히려 완고하거나 답답해 보인다. 특히 나보다 연배가 있는 사람들이 본인만의 확고한 취향을 드러낼 때 좀 피곤하네, 생각한다. 나는 뜨거운 커피 아니면 안 마셔 따위, 관심 없으니까 좋을 대로 하시기를. 예전에는 '아무거나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일 성가셨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편하다. 나도 점점 아무거나 좋은 사람이 돼 간다. p.179
“나 원래 이거 안 좋아하잖아.”
“나 원래 이런 거 좋아하잖아.”
나는 이런 말을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꼭 자기만의 신념이 대단한 것처럼, 이기적인 발언 앞에 이런 말을 붙이는 경우를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끔 주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많은 것을 감당하고 맞춰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함께할수록 나 역시 어느새 “나도, 다 괜찮아.”라고 말하게 된다.
여유 있는 사고를 가진 사람은 결코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주장하지 않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불쑥 눈가가 촉촉해진다. 여기, 이상하게 사람을 찡하게 만드네?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무해한 캐릭터들이 신나게 움직이고, 환상의 세계에서 마음껏 동심을 펼치는 관객들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공간이란 현실에 없다. 딱 한군데 있다면 오직 여기다. 나는 눈앞을 지나가는 캐릭터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운다. 태어나서 처음 본 산리오 퍼레이드는 눈물로 얼룩진 채 끝난다. p.210
오랜만에 에버랜드에 갔던 날, 퍼레이드를 보며 언니가 울컥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실 나 역시 조금 울컥했다.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과거의 나와 잠시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행복하고 귀여운 것을 보며 눈물이 나는 경험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좋았다.
글 속 표현처럼, 그곳은 정말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공간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에버랜드를 자주 다니게 된 이후로는 퍼레이드를 빠지지 않고 보게 되었다. 퍼레이드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덩달아 마음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좋아하는 건 할 수 있어. 형편이 안 돼도 좋은 거 보고, 경험해도 돼. 내가 가진 돈에 하고 싶은 걸 맞추면 삶이 궁색해져. 좋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마.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다. p.271
이 말은 작가님의 언니분이 건넨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좋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지 말라는 말. 정말 그렇다. 곰곰이 돌아보면, 하지 않아서 후회한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나에게 좋은 것을 자주 허락할수록, 나는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앞에 두고 망설이기보다, 기꺼이 선택하려고 한다. 내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소중하니까.
보통의 일상에서도 나에게 무언가를 선물하면서 지내야겠다. 딱히 잘한 거 없어도, 축하할 일 없어도 아주 가끔씩, 불쑥, 하나씩, 나에게 상냥하게. P.272
돌이켜보면 사고 싶은 것을 사면서도, 그것을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필요해서, 혹은 갖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아무런 기념일도 아니고 특별히 잘한 일도 없는 날에, 내가 바라는 것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건 생각보다 중요한, 나 자신을 위한 챙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계속 나를 예뻐해 주고, 격려해 주고, 아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나를 위한 선물을 언제라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내가 나에게 상냥해지는 일이 가장 진짜인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