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라는 무해한 힘

강아지와 판다, 남편과 엄마를 보며 배운 다정한 삶의 태도

by 봄여름


‘귀여우면 끝’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귀여움에 한없이 취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한 해가 지날수록 귀여운 존재 앞에서 내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몽글몽글해진다.


우리 집 강아지 ‘사랑이’는 아마 누구보다 자주 이 말을 듣는 강아지일 것이다.

“사랑아, 넌 왜 이렇게 예뻐? 어쩜 이렇게 귀엽니!”

나도 모르게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감탄을 쏟아낼 때면, 정작 사랑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귀여운 거 하루 이틀 보나? 매번 저러니 참 피곤하네.’ 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럴 때면 내가 신기해 보이는 쪽은 오히려 강아지인 것 같다. 나도 너에게만큼은 귀여운 보호자이고 싶은데, 너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귀여움의 또 다른 이름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판다, 그중에서도 ‘푸바오’다. 바오 패밀리 모두를 아끼지만, 푸바오를 마주하면 나는 유독 무력해진다. 오죽하면 전생에 내 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어릴 적 나는 누군가 “드라큘라!”라고 외치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리는 겁쟁이였다. 아빠는 울보인 나를 놀리는 게 재밌으셨는지 “아니 아니, 에프킬라!” 하고 슬쩍 말을 돌려 나를 달래곤 하셨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어 다시금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대상을 만났으니, 바로 행복을 주는 보물 푸바오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애로운 미소가 번지다가도, 어느새 코끝이 찡해진다. 이것 역시 귀여움에 무너진 결과일 것이다. 덕분에 내 생전 처음으로 ‘덕질’이라는 걸 시작했다. 집안 곳곳이 판다 굿즈와 인형들로 채워져, 흡사 판다월드 굿즈샵을 옮겨놓은 듯한 축소판 같다. 그래도 나는 이 풍경이 마냥 좋다. 다행히 남편은 이런 나를 기꺼이 이해해 준다. 한밤중에 굿즈 하나를 사기 위해 에버랜드까지 달려가 준 남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보, 앞으로도 나의 이 행복한 덕질을 응원해 줄 거지?


생각해 보니 내 남편 또한 귀여운 사람이다. 올해 마흔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순하고 맑다. 나에게 늘 관대하고,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곁을 내준다. 행동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별것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냥 같이 있으면 귀엽다.


그런데 본인은 ‘귀엽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 너무 귀여워.”

“난 귀여운 사람 아니야. 잘생겼어.”

앞의 말은 스스럼없이 하고, ‘잘생겼어’라는 말은 아주 작은 모기 소리로 덧붙이는데, 그 모습마저 내 눈에는 영락없이 귀엽기만 하다. 남편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답도 없다는데, 나는 이미 끝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귀여움 원형’은 바로 엄마다. 칠십 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투명한 피부와 재치를 겸비한 우리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적, 엄마를 바라보던 아빠의 눈빛을 기억한다. 반달이 된 눈에서 하트가 뿅뿅 쏟아지던 다정한 표정. 이제는 그런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서운하지만, 엄마의 귀여움만큼은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다.


딸과 함께 판다를 보러 다니고, 가방에 판다 키링을 커플로 달고 다니며 사진도 남기는 엄마. 소심한 나와 달리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엄마는 쿨한데도 한편으론 무척 소녀 같다.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엄마를 보며 나는 나이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 더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나이가 들면 엄마처럼 귀여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토록 귀여움은 무해하다. 누구든 무장해제시키고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밝은 에너지가 곁에 있는 사람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을, 나는 매일 나의 소중한 이들을 보며 배운다. 혹시 지금 슬프거나 우울하다면 주저 없이 귀여운 것을 찾아보길 권한다. 귀여움 앞에서는 마음이 가장 먼저 풀려버리니까.




귀여운 존재 앞에서 내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몽글몽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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