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을 지나 여기까지
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문득 카카오톡 프로필에 졸업식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 ‘뭐지?’ 하는 마음으로 눌러보았다. 사진 속에는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훌쩍 자란 얼굴로 서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고? 일곱 살 때부터 몇 년 동안 피아노를 가르쳤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벌써 열일곱 살이 되었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벙쪄서 한동안 눈만 꿈뻑거렸다. 시간은 어느새 십 년이나 흘러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어릴 적에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문제였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건지, 나는 왜 늘 초등학생인 건지. 중학생이 되어서는 고등학교 언니들이 부러웠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빨리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을 때도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물셋을 넘기며부터는 한 살씩 나이를 먹는 감각이 또렷해졌고, 그렇게 서른에 닿았다. 복잡하고 힘들고 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삼십 대를 지나 어느덧 마흔에 이르렀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라는 시간 속에 함께했던 아이들 중 더러는 이제 이십 대 중반이 되었다. 이제야 실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어마무시하다.
곰곰이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내가 꿈꾸던 모습이 되었을까. 어느 부분은 맞고, 또 어느 부분은 아니다. 틀린 음을 짚었다고 해서 연주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잠시 머뭇거려도, 박자가 조금 흐트러져도 곡은 끝까지 이어진다. 나의 삼십 대도 그랬다. 불협화음 같던 날들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그 모든 음표가 모여 지금의 나라는 곡을 만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어디인가. 욕심이 없는 편인지 나는 현재의 삶에 비교적 만족하며 지내는 편이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매일이 지옥 같지 않은 게 어디야. 극단적인 비교일지 몰라도, 이렇게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나의 시간을 꾸려나가는 지금의 내가 나는 참 좋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옥상달빛’의 노래가 떠올랐다.
<그대로도 아름다운 너에게.>
이 가사는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그리고 낯선 마흔의 문턱에 서 있는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처럼 들렸다. 일곱 살 아이의 서툰 연주가 그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웠듯, 삶의 굴곡을 지나온 지금 나의 담담한 만족감 또한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더 잘해내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만큼의 시간과 이만큼의 마음을 쌓으며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각자의 선율을 아름답게 완성해 가고 있는 중이니까. 오늘 밤에는 이 노래를 들으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차곡차곡 쌓인 나의 평범하고도 소중한 하루들을 가만히 안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