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짜입니까

성해나 소설 〈혼모노〉를 읽고

by 봄여름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2024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이다.

무속이라는 낯선 세계를 통해 ‘진짜와 가짜’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많이 이슈가 되었지만 그동안 읽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수상작품집을 발견했고, ‘어? 같은 내용인가?’ 싶었는데 정말 그 작품이 맞았다. 궁금했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읽게 되었다.


작품집에 실린 여러 소설 중 나의 첫 선택은 단연 〈혼모노〉였다. 독서에도 타이밍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생각보다 의외였다. 무당 이야기라니.

나에게는 생소한 세계였지만 읽는 내내 눈앞에서 영상처럼 장면이 펼쳐졌다.


오랜 세월 신을 모셔온 무당과 이제 막 신내림을 받은 신애기의 마주 선 이야기.

다양한 비유 속에서 결국 독자는 계속 질문하게 된다. 진짜와 가짜, 그중 어떤 쪽이 진짜일까. 혹은 가짜일까.

세대의 격차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시선을 나에게로 옮겨올 수도 있다. 나의 진짜는 무엇일까.


이를테면 sns 속의 나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런 고민은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주로 행복한 모습만 sns에 올린다. 그것도 분명 나의 일부지만 행복만 가득한 피드를 보고 있자면 인생이 그게 전부는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우울하고 슬픈 모습을 굳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 선택마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멈이 저런 음식을 먹는다고?
기가 차다못해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목구멍이 청와대라 밥은 꼭 고두밥으로, 찬은 고춧가루가 섞이지 않은 담백한 것으로, 보양식이라도 비리고 누린 것은 질색하던 그 까다로운 늙은이가 버거를 먹는다고?
p.249


30년 넘게 진짜 신내림으로 활동해 오던 무당 문수에게서 하루아침에 신기가 사라진다. 모시던 할멈이 신애기에게 이동했다는 설정은, 오랫동안 무당으로 살아온 문수를 단숨에 무능한 존재로 만든다. 자신은 할멈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는데, 신애기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상실감은 더욱 크다. 하물며 신애기는 그런 문수의 몰락을 비웃기까지 한다.




그애는 살기어린 눈으로
나를 똑바로 주시했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p.254



편의점 가판대 앞에서 바나나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는 뭐가 다른지 한참 고심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하나 남은 바나나우유를 쏙 채간다. 보라색 트레이닝복이 눈에 익더라니 앞 신애기다.
p.264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를 마시며 나는 장수 할멈을 떠올린다.
p.266



바나나가 없는 바나나맛 우유처럼, 이 장면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진짜와 가짜’의 감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급해진 문수는 급기야 유튜브에서 ‘신내림’ 영상을 찾아보며 접신을 연기하는 연습까지 한다. 그러나 문수의 능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자신에게 들어오던 일들마저 신애기에게 모두 빼앗기고 만다.



그 의원이 그러더라. 이제 넌 감이 다 떨어진 것 같다고. 자기가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게 몇 년인데 니세모노 하나 구별 못하겠냐고.

니세모노. 그 단어에 퍼뜩 감이 온다. 할멈이 자주 쓰는 말. 저건 분명 할멈이다.
...... 신령님이십니까?
P.273



이제 더 이상 무당으로서의 능력도 남아 있지 않은 문수는, 자신에게 굿을 받기로 했다가 취소한 오래된 인연의 굿판을 찾아간다. 그 인연은 대신 신애기에게 굿을 의뢰한 상태다. 한창 굿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그 옆에서 스스로 굿을 벌인다. 무당도 아닌 몸으로 말이다.


신애기는 칼을 그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지만, 문수의 몸에서는 얼굴이며 발이며 피가 흥건히 흐른다. 그럼에도 문수는 물러서지 않고 신애기와 맞서 굿을 이어간다. 그 무모한 굿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놀라지만, 가장 크게 동요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신애기다. 끝내 신애기는, 그토록 무시하던 사람의 처절한 굿 앞에서 먼저 체력이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 순간, 문수는 이렇게 말한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무얼 알겠냐만은.
큭큭, 큭큭큭큭.
p.281







굿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영화 '파묘'가 떠올랐다. 책을 읽고 있음에도 머릿속에서는 장면이 계속 영상처럼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무당이라는 설정만 생경했을 뿐, 이야기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고, 반대로 ‘니세모노’는 ‘가짜’를 의미한다. 이 단순한 대비가 읽는 동안에 계속 마음에 남는다.


이 소설은 묻는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혼모노〉는 무속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버텨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신은, 진짜입니까?




책' 2024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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