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시간을 지나온 지금에 대하여
주말 오후, 영화 <만약에 우리>를 봤다. 원작 <먼 훗날 우리>를 먼저 봤기에 리메이크 작품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예전에는 극장에 사람이 꽉 차 있었는데, 이 영화가 아무리 흥행을 한다고 해도 상영관은 여전히 한산했다.
영화는 헤어진 두 사람이 우연히 비행기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든 것이 서툴지만 빛나던 20대에 마음을 온전히 준 사람. 그런 사람을 훗날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정이 내게는 좋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이별은 아이유의 노래 ‘나만 몰랐던 이야기’ 가사처럼 “좋은 이별이란 거 결국 세상엔 없는 일이라는 걸…”로만 믿어왔으니까.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조금 달랐다. ‘만약에’라는 제목이 붙은 건 정말 탁월했다. 헤어진 두 사람은 다시 잠깐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시간을 차분히 매듭짓는다. 언제나 이별의 끝은 구질구질하다고 여겨온 나의 오래된 생각이 조금 흔들렸다. 세상에는 아름답게 끝나는 관계도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은호가 정원에게 커튼을 활짝 열며 건네던 한마디였다.
“이거 너 가져.”
고시원 방에서는 거의 들어오지 않던 빛이 그의 방에서는 훨씬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그 빛을 자기 몫으로 남기지 않았다. 사랑이란 이렇게 사소한 순간 앞에서 먼저 내어줄 줄 아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마음이 시들어갈 때의 묘사는 시렸다. 늘 정원을 향해 있던 선풍기 바람이 그것이었다. 정원이 떠나기로 마음먹은 날, 은호는 그 선풍기를 자기 쪽으로 돌려 고정해 버린다. 오직 자기 자신의 더위만 식히려는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사랑의 끝은 거창한 싸움이 아니라, 더 이상 네가 덥지는 않은지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항상 나를 향해 있던 시선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로만 향할 때, 이미 사랑은 소리 없이 끝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설정은 흑백과 컬러의 대비였다. 다시 만났을 때 흑백이던 두 사람이 진짜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화면은 다시 색을 되찾는다. 이 부분은 원작과 같아서 좋았다. 다만 두 사람이 지난 시간을 되짚는 장면은 원작이 더 슬펐다. 원작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면, <만약에 우리>는 더 담담하게 지나간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보다는, 각자의 분위기에 맞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남았다.
분명한 건, 두 작품 모두 서로의 빛나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연인이 어긋나고 깨져버린 관계를 이제는 잘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사랑은 시작할 때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끝낼 때 더 잘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이별을 안 좋게 기억하는 이유는, 좋은 추억마저 흐려지게 만드는 마지막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그 ‘아름다운 마무리’를 대신 보여준다.
중간중간 옆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남편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다행이다.’
만약 남편을 20대 초반에 만났다면, 혹은 중반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늦게 만난 인연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이 영화를 보며 누구나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릴 것이다. 혹은 그 시절의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순수하지만 마음만 앞섰던 시절의 ‘나’를 꺼내보게 된다. 되돌아보면 부끄럽고 어렸지만, 그때만의 반짝임이 존재하던 시간이었다. 과거가 된 그 시절을 주인공들처럼 좋게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영화가 끝나고 남편과 손을 잡고 극장을 나서는데 묘하게 후련했다. 마치 하나의 이별을 잘 마무리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나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흑백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색찬란한 색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참으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