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찝함이 오래 남는 영화, <슬픔의 삼각형>

계급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바꾼다

by 봄여름


영화 <슬픔의 삼각형>을 봤다. 시작부터 묘한 불편함이 밀려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외모의 순위’였다. 모델이라는 직업 특성상 남자 주인공 칼은 끊임없이 외모를 평가받는다. 브랜드의 가치에 따라 표정을 갈아 끼우며 계급을 증명해야 하는 오디션장에서 그가 들은 말은 “보톡스 좀 맞아야겠다"는 지적이었다. 미간의 주름을 ‘슬픔의 삼각형’이라 부른다는 설명과 함께.


칼의 수난은 패션쇼장에서도 이어진다. 부유한 권력자들이 원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밀어내자, 칼의 자리는 한 칸씩 뒤로 밀리다 결국 사라져 버린다. 돌아온 대답은 황당할 정도로 태연하다.

“뒤에 가서 앉으세요.”

웃음이 터지면서도 씁쓸한 장면이었다. 반면 여자친구 야야는 잘나가는 모델이자 인플루언서다. 칼보다 더 많이 벌고 화려한 주목을 받지만 데이트 비용은 절대 쓰지 않는다. 칼이 불공평함을 호소해도 야야는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니 이들 관계에도 이미 계급이 존재했다. 물론 그 정점에는 야야가 서 있었다.


장면이 전환되어 호화 요트가 나타난다. 그곳에 모인 부자들의 직업은 하나같이 모순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한다면서 살상 무기인 수류탄을 만드는 부부. 오물을 비료로 팔아 막대한 부를 거머쥔 러시아 재벌. 모두가 이상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것이 일상인 듯 자연스럽게 웃고 있다. 야야 역시 인플루언서 협찬으로 요트에 올라 칼에게 가짜 일상을 사진으로 찍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야야의 미모 역시 시간이 흐르면 계급의 아래로 추락할 유통기한 있는 권력임을 암시한다.


부자들은 배 위에서 거만하게 굴지만, 결국 배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치닫는다. 그 과정은 견디기 힘들 만큼 지저분하고 적나라하다. 긴 밤이 지나고 잠시 여유를 되찾은 듯한 배 위로 수류탄 부부가 만든 무기가 떨어진다.

“어머, 여보. 이거 우리 거잖아!”

죽음 앞에서도 폭탄을 ‘제품’으로 알아보는 그들의 모습은 비극적인 인과응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배는 폭발과 함께 침몰한다.


이들의 세상은 이제 무인도로 옮겨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시름하던 사람들 앞에 구명정 하나가 나타난다. 그 안에는 물과 과자, 그리고 배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던 애비게일이 타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애비게일은 이내 문어를 잡고 불을 피우며 자신의 생존 능력을 증명한다. 환호는 잠시뿐, 이곳의 최고 계급은 애비게일이 된다. 그녀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비상식량의 점유가 그녀에게 절대 권력을 쥐여준 것이다. 사람들은 애비게일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칼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상납하고, 야야는 그 대가로 얻은 프레첼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무인도에 새로운 질서가 생기자 칼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애비게일에게 아예 사귀자고 제안한다. 야야가 상처받더라도 최고 권력자와 결탁해야 편히 살 수 있다는 계산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야야가 애비게일을 데리고 섬 반대편을 탐색하다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무인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구조의 확신이 생기는 순간, 애비게일은 시간을 끌며 머리를 굴린다. 돌아가는 순간 자신은 다시 가장 낮은 계급인 ‘청소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야야는 말한다.

“돌아가면 내 비서로 채용해 줄게요.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요.”

선의를 가장한 그 말은 애비게일에게는 치욕적인 선고였다. 돌아가면 다시 낮은 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애비게일의 손에 든 돌이 부르르 떨리는 장면에서 영화는 멈춘다. 그 뒤로 칼이 숲을 헤치며 달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야야를 찾는 것인지, 혹은 구조의 희망을 향해 달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질주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다 보고 나면 묘한 찝찝함이 오래 남는다. 결국 가난한 사람조차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 앞서 거만했던 부자들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며 반복되는 이 삼각형의 구조.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말하고자 한 진짜 ‘슬픔의 삼각형’이 아닐까.




triangle-of-sadness-poster-1dfcd.jpg 영화 <슬픔의 삼각형>


thumb_947A559D-7098-4769-89CF-C39CA1285BF7.jpg 영화 <슬픔의 삼각형>


triangle_of_sadness-448136310-large.jpg 영화 <슬픔의 삼각형>


p22114804_i_h10_ac.jpg 영화 <슬픔의 삼각형>


Dolly-De-Leon-as-Abigail-and-Charlbi-Dean-as-Yaya-in-Triangle-of-Sadness-508d029.jpg 영화 <슬픔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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