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지옥’을 보다가 떠올린 우리의 시작
나는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사람이 아니다. 남의 설렘을 구경하는 일이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접한 ‘솔로지옥’은 끝까지 보게 되었다. 연애 자체보다 사람의 심리가 궁금했기 때문일까.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이 움직이고, 기대하고, 돌아서는 그 섬세한 순간들이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단번에 선택받고, 누군가는 몇 번의 기회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이의 감정이 나와 맞닿는 일이 얼마나 기적 같은 행운인지 새삼 느꼈다.
프로그램 속에서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기우는 장면도 있었다. 그건 계산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이 먼저 움직인 걸까. 관심이 없던 사람도 “나는 당신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한 번 더 보게 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반대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모두 드러내는 출연자는 유독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솔직함 덕분에 오히려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보였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은근히 여린 구석이 비치는 순간들이 있었다. 속을 다 보여준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문득 남편과 저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는 그냥 지나쳤을까, 아니면 천국도를 다녀오고 최종 커플이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지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작은 ‘솔로지옥’이 있었던 셈이다. 처음 만난 곳은 독서모임이었다.
그곳에는 대부분 솔로 남녀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오로지 책이 좋아서 참여했고, 모임이 끝난 뒤 이어지는 뒤풀이에는 좀처럼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괜한 오해가 생길까 봐 늘 먼저 선을 긋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처음으로 그 자리에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선택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니 조금은 더 푼수처럼 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몰랐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걸. 그저 친해지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다. 독서모임에서는 그런 말을 종종 들었으니까. 그래서 남편도 그중 한 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머뭇거림 없이 내게로 직진했다. 원래는 말수 적고 조심스러운 내향적인 사람이었다는 것도, 성격에도 없는 용기를 내어 다가왔다는 것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솔로지옥’을 보며 다시 느낀 건, 연애가 생각보다 많은 애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선택받기 위해 먼저 다가가는 일은 설레면서도 피곤해 보였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은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일상을 나눈다. 연인이면서도 가장 좋은 친구인 이 사람 하나만 곁에 있어도, 다른 관계를 애써 채우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모난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 모양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프로그램 제목은 여전히 조금 과한 것 같다. 솔로가 꼭 지옥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 안에서 각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건 분명 재미있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보는 묘미가 있으니까. 그렇게 타인의 마음을 구경하다가, 나는 깨닫는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누군가 나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푼수처럼 웃고 떠들던 때에도,
책 이야기에 괜히 열을 올리던 그 시간에도,
그 사람의 시선은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사랑은 거창한 고백의 순간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