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사진 찍는 날

누가 시간 좀 붙잡아 줬으면 좋겠다

by 봄여름


내가 생각하는 내 얼굴이 아닌 낯선 모습과 맞닥뜨리는 순간이 가끔 있다. 바로 무표정한 사진을 찍을 때다. 경직된 자세와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은 마치 내가 아닌 사람 같다.


외교부에서 여권 만료 안내 문자를 받은 지도 꽤 되었다. 새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진 찍는 게 왜 이렇게 귀찮은지. 미루고 미루다가 문득 ‘그래, 오늘이야!’ 싶은 날이 있다. 사실은 다음 날 찍기로 했는데 하루 더 빨리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마음과 몸이 같이 움직이는 날. 사진관 예약을 하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흐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사진관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단정했던 머리는 바람에 마구 날려 헝클어져 있었다. 잠시 머리를 매만지고 나서야 사진관 안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가득했고 특히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3월 개학을 하고 학생증 사진을 찍으러 온 모양이었다. 다들 엄청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예쁜 얼굴이 화장 때문에 더 안 예뻐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아직은 모르는 나이였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무작정 따라 한 짙은 메이크업이 살짝 안타까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싶었다.


내 앞의 학생이 먼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나오기도 전에 입술색을 핑크로 해달라고 두 번이나 말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10년 전에 만든 여권 사진은 그야말로 별로였다. 얼굴 살이 지금보다 없어 병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밝은 인상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여권 사진은 눈썹이 다 보여야 해요.”

“이거보다 더요?”

앞머리를 옆으로 몇 번이나 넘겼더니 영 촌스러운 모양새가 되었다. 여권 사진 규정이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껏 어색한 표정으로 몇 컷을 찍었다. 속으로 부탁드렸다.

‘사진기사님, 제발 최선을 다해주세요.’

내 얼굴 그대로 나올 뿐인데 잘 찍어주기만 바라는 마음은 아마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촬영이 끝나고 조금 기다리자 아까 앞에 있던 학생이 먼저 수정에 들어갔다.

“입술색 핑크 해주세요.

입술 좀 내려주세요.

턱 좀 깎아주세요.”

조그맣게 말했지만 사진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 들렸다. 더 나아 보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이미 학생의 얼굴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사님은 이게 최선이라는 듯 덧붙였다.


어느 정도 타협이 되었는지 곧 내 사진을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실적이면서도 괜찮았다. 사진사님이 화면을 보며 물었다.

“어떠세요? 수정하고 싶은 부분 있으실까요?”

“괜찮은 것 같은데요.”

여기저기 고쳐 달라고 말하는 게 어쩐지 멋쩍었다. 빨리 사진을 받아 나가고 싶었다. 대충 넘어가는 손님이 다행이었는지 사진사님은 내가 말을 바꾸기 전에 바로 말했다.

“이대로 출력할게요.”

내가 잘한 걸까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사진관을 나와 확인해 보니 살짝 아쉬웠다.

‘눈썹 좀 수정할 걸 그랬나.’

돌아오는 길에 일찍 퇴근한 남편을 길에서 만났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밖에서 보면 왜 이렇게 반가운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괜히 들떠서 손을 흔들었다. 이참에 남편 여권 사진도 찍기로 했다. 둘 다 만료를 앞두고 있으니 같이 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잠시 뒤 다시 찾은 사진관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꽤 기다린 끝에 남편 사진을 찍었고 받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마치 사진 찍는 날로 정해진 것처럼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고, 못 찍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사진 찍는 날이 되어버렸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순댓국을 먹고 근처에서 디저트와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테이블 위에 오늘 찍은 여권 사진 두 장을 나란히 올려두었다. 그걸 바라보는데 묘하게 설렜다. 앞으로 함께 갈 여행지가 어디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여권을 만들게 된 김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사진 한 장 찍는 일에도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여행은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든다. 그래도 어딘가 가면 좋지 않을까. 집을 나서는 게 힘들 뿐, 막상 나오면 누구보다 즐거운 집순이니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못 나왔다 여겼던 사진도 웬만하면 애정 어린 눈으로 보게 된다. 10년 전에 찍었던 여권 사진도 그랬다. 그때는 별로였는데 지금 보니 그 시절의 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덜 아쉬웠다.


사진 찍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또 별것인 모양이다. 사진관 파우더룸에서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만지며 준비하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나중에 ‘그때 그랬었지.’ 하고 떠올릴 장면이 되기도 한다.


10년 뒤에 여권 사진을 만들 때는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누가 시간 좀 붙잡아 줬으면 좋겠다.




여권 사진 찍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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