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온도
나는 다정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요 며칠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퉁명스러움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더라도 그날의 장면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어? 저 사람. 나한테 그때 그렇게 말했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된 데이터가 빠르게 작동할지도 모른다.
외출 전부터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남편에게 새로 산 패딩 가방을 보여줬을 때였다. 평소 초록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봄을 맞아 색으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받아본 가방은 예상보다 더 예뻤고, 보고만 있어도 생동감이 넘쳤다.
‘초록색, 참 예쁘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보여줬다.
“이거 봐봐. 예쁘지? 싱그럽지?”
“부지런하게 산다.”
돌아온 대답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생각지 못한 반응 앞에서는 멈칫하게 된다. 잠자코 곱씹는 것이 나다운 방식이었다. 비싼 것도 아니고 세일해서 3만 원대에 산 가방에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나중에 왜 그렇게 대답했냐고, 기분이 상했다고 말하자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그날은 밀려둔 행정 업무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여권을 새로 만들기 위해 여권 접수처를 방문했다. 남편과 함께 갔는데 내 순서가 먼저였다.
“렌즈 착용하셨어요?”
다짜고짜 날아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뇨. 저 렌즈 착용 안 하는데요.”
“여기에 서명하세요.”
계속 퉁명스러운 말투로 ‘렌즈 X’라고 적힌 곳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등기로 받겠다고 하니 그녀의 대답은 또다시 짧게 돌아왔다.
“본인이 받으셔야 해요.”
“네. 알고 있어요. 제가 받을 거예요.”
지문 입력을 하고 끝내기까지 같은 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조금 지쳤다. 일이 끝나고 남편에게 가보니 그는 다정한 응대를 받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 했지만 어쩐지 찝찝했다.
집에 돌아온 저녁, 나는 아침에 들었던 그 말을 거울 치료처럼 되돌려주었다. 마침 남편도 이것저것 산 것이 많았고, 게다가 내가 산 3만 원대 가방보다 가격이 더 나갔다.
“부지런하게 산다.”
그제야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건지 다시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상한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알겠니, 남편아?
다음 날에는 동물 병원에서 또 불친절을 마주해야 했다. 강아지와 함께 식당이나 카페에 방문하려면 접종 증명서가 필요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은 핸드폰 앱과 연동이 되지 않아 증명서를 출력하러 갔다. 그곳은 언제 가도 퉁명스러움이 기본값인 곳이다. 몇 년째 다녀도 적응이 어렵다.
최근 사랑이가 많이 아파 검사 장비가 더 갖춰진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직 접종 기록이 없었다. 결국 이전에 다니던 병원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면서 동물 등록 번호를 알고 싶다고 했는데 굳이 알 필요가 있냐는 눈치였다. 괜히 무안한 기분이 들었다. 필요한데 말도 못 하나. 접종 기록을 받고 심장 사상충 약을 사서 나오는데 답답함이 밀려왔다.
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랑이는 주사를 맞지 않고 나오자 마냥 좋아했고, 공원 쪽으로 산책 가자고 나를 졸랐다.
‘그래. 이 병원 진짜 바이바이야!’
쌀쌀한 봄 날씨였지만 강아지와 뛰는 덕분에 금세 더워졌다. 잠깐의 외출이었는데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사랑이의 발을 닦고 빗질을 하다가 어제와 오늘 쌓인 불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사람들이 왜 그래?”
녀석은 해맑은 얼굴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화풀이 대상이 된 것만 같았다. 작은 말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불편한 감정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다정함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일,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타려 할 때 열림 버튼을 눌러 잠시 기다려주는 일. 이처럼 사소한 행동에서도 나는 다정함을 느낀다. 짧은 기다림 속에 ‘당신을 보고 있다’는 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오가는 말에도 따뜻한 표현이면 좋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괜히 생긴 말은 아닐 것이다.
친절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가식적인 친절이라도 무뚝뚝한 태도보다 낫다고 본다. 친절하면 덧나나? 손해 보나? 나만 이렇게 말투와 억양에 예민한 걸까.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다정할 수조차 없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다. 조금씩 다정해지면 결국 큰 다정함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정말로 다정한 건, 좋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