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차의 꿈〉, 묵묵히 시간을 통과하는 것

겪을 건 다 겪어야 끝나죠

by 봄여름


평범한 인생이 있을까. 어떤 삶이든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있다. 단 한 순간이라도. 하루하루를 묵묵하게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궁금해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보통의 날을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기차의 꿈>이라는 영화를 봤다. 벌목꾼이자 철도 노동자인 그레이니어의 일생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는 크게 성공하지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도 않는다. 그저 일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다. 겨우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가고, 그는 남은 생을 조용히 혼자 보낸다. 쓸쓸함이 전부인 영화인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죽은 나무가 산 나무만큼 중요하고요. 그런 걸 보면 우리도 배울 게 있을 거예요."


영화 속 이 대사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라진 것들도 여전히 무언가의 일부라는 것. 떠나간 사람도, 흘러간 시간도, 없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 그 말이 그레이니어의 인생을 설명하는 것 같았고, 어쩐지 내 이야기처럼도 들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슬픔과 상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과, 그로 인해 삶이 무너지는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때의 시간에 대해서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 또한 그레이니어처럼 뻥 뚫린 마음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었다. 앞이 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살아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서 다시 살아가게 된다.


"누구에게나 사는 동안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의 슬픔과 고독이 있다."


동명 소설의 책 소개 첫 줄처럼. 때때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성숙해지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무치게 아파본 사람은 남의 아픔도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소중하고 가치 있었는지도 뒤늦게 알게 된다.


영화가 끝난 뒤 남편은 이 영화가 오래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강아지 사랑이와 나를 떠올리면 그레이니어의 마음이 헤아려진다고. 가끔 나는 소중함과 사랑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면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을 신이 시기해서 빼앗아갈 것만 같아서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밀어낸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며 흔들리기에는,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따금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 속 그레이니어의 눈처럼 사연이 있고 깊은 눈을 가진 사람. 많은 것을 겪고 지나온 사람에게서 풍기는 온도 같은 것. 결국 강인함은 묵묵히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 아닐까.


“겪을 건 다 겪어야 끝나죠.”





영화〈기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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