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샘 Apr 26. 2020

열등감. 도대체 넌 뭐니?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많았다. 유명해지지 않으면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 같았고, 주목받고 싶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배우 유아인, '도올 아인 오방 간다', kbs1tv, 2020.3.12. 방송 중에서)



비단 그(유아인) 뿐 아닐 것이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과 비교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궁금한 것이 사람 심리다. 이런 심리 근저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한 책 <아들러의 심리학을 읽는 밤>을 보며  '열등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열등감은 사람을 경쟁에 시달리게 하거나, 또는 삶을 회피하는 자세를 갖게 한다. 전자(경쟁)는 우월성을 추구하며 평생 나 잘났음을 증명하기 위해 달려가는 삶이고 후자(회피)는 자신의 열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포기하고 무기력해지는 삶이다. 이런 면에서 열등감이란 분명 사람을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깝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열등감.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를 괴롭힐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더군다나 요즘 같이 경쟁의 미덕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말했듯, 인간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즉 '소유의 방식'과 '존재의 방식'을  따라 산다.


'소유(having)의 방식'을 지닌 사람은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척도'를 쫒는다. 사회적 지위, 재산, 평판, 겉으로 보이는 자신을 상징하는 것들에 자아를 투영한다. 그 척도가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므로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근원적으로 불안하기에 계속해서 달려 나가 그것을 유지하거나 확장시켜야 한다. '나는 재산이 얼마인 사람, 나는 무엇 무엇을 가진 사람' 등으로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존재(being)의 방식'의 사람은 측정 가능한 것들은 모두 상대적이며 일종의 무상한 것임을 인식한다. 따라서 내면의 바로미터를 자신의 삶의 존재 척도로 삼는다. 이것은 '평온', '헌신', '정직' 등의 가치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 자신은 느끼는 것이다. '나는 평화로운 사람,  기쁨을 나누는 사람' 등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존재 방식이다.


'소유'의 관점에서 우월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경쟁에 휘달리거나,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듯하면 계속 달릴 것이고,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 경쟁이라고 여기면 냉소와 무기력,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휩쓸리기 쉽다. 이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남과의 비교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반면 '존재'로서의 자기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만족과 성장을 가치 척도로 삼는다. 이것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의 추구이다. 즉 '자신이 좇는 최고의 가치'에 도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기준 삼는다. 이것은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스스로에게 묻는 세 가지 질문


1.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사람을 보고 질투나 부러움의 감정이 이는가?

2.  '열등한 사람,  우월한 사람' 의 기준을 갖고 자신과 남을 평가하는가?

3.  직업, 사는 집, 외모 등에 자주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느끼는가?


질투나 부러움 대신 '존경'을,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 '자신의 최상의 모습과 비교하기', 나의 외적 조건 대신 '내면의 풍요와 만족'에 집중한다면 그때 자신을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것이다. 비록 쉽지 않으며 변화는 더디더라도, 이러한 삶을 지향해 나가는 것, 그 방향성을 잃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존재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우월을 증명하기 위해 사는 피곤함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아들러의 말은 과언이 아닌 것이다.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다. 타인과 경쟁의 에너지로 삼을 것인가,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에너지로 삼을 것인가의 선택 말이다.

 

'너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우월감'으로 세상을 살려한다면 그것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행복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 경쟁이 주는 이점에 익숙한 우리는 어쩌면 '함께 힘들어 지는 삶'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열등감의 문제를 파고들어 '자아 수용'을 말한 아들러와 더불어 에리히 프롬이 정의한 '존재로서의 삶'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남들로부터의 주목이 아닌 내면을 주목하며 사는 일은 힘겹기에 더욱 가치 있을 것이다. 



#열등감 #아들러 #에리히프롬 #유아인 #소유냐존재냐

    

매거진의 이전글 하버드 학생들이 배우는 글쓰기 방법은 무엇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