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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Jan 30. 2024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법

죽음이 가까이 느껴지는 요즘

첫 부고 소식을 들은 건 지난 독서모임에서였다. 한 회원분이 집에 일이 있다고 계속 모임에 불참하셔 무슨 사정보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그간의 일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 겪지 않은 일이라 그 슬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그저 먹먹한 심정으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온라인 글쓰기 모임의 한 글벗님 아버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데 이어 같은 날 대학 동아리 선배 아버님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 또 다른 글벗님 시어머님의 부고 소식까지 근래 들어 연달아 네 건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애도하는 메시지가 가득한 카톡 방 아래에는 오늘 만든 반찬 사진과 일상을 공유하는 삶의 활기로 시끌시끌한 또 다른 카톡방이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서조차 우리는 생과 사에 한 발씩 걸쳐놓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바로 곁에 있지만 평소에는 외면하며 살아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초등학교 2학년 아빠가 사고를 당하신 후로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과 같은 119 구급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근처 슈퍼에서 구입한 붕대와 고무줄로 차에 깔린 다리를 대충 지혈하고 병원으로 실려가시는 아빠의 모습을 목격했었다. 사고 현장에 있었음에도 피가 낭자했던 장면이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어른들이 못 보게 막았거나 아니면 봤는데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렸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필름이 끊긴 것처럼 드문드문 재생되는 기억의 그다음 장면은 집에서 혼자 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일기라서 내용을 적고 그림도 그렸같은데 다음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일기 내용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셨다. 어른들의 대화 내용에서 주워들은(그러나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말들을 전달하자 낮은 탄식을 뱉으시더니 나를 끌어당겨 꼭 안아주셨다. 혼나는 줄 알았다가 안아주시길래 얼떨떨한 와중에도 선생님의 품은 참 따스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집에 드리웠다. 이번에는 엄마가 크게 아프셨다. 장 수술을 받으시고 꽤 오래 입원해 계셔서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가 올라오셔서 집안일을 봐주셨다. 조그만 노인이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우리 삼 남매 뒤치다꺼리를 해 주셨는데 그 수고도 모르고 철없었던 나는 음식이 맛이 없네, 설거지한 그릇에 밥풀이 묻있네,라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할머니에게 못되게 굴었었다.


좀 지나면 엄마가 돌아올 줄 알고 할머니가 빨리 시골에 내려가시길 바랐는데 상황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를 받은 이모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마가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느꼈던 그 거대한 두려움은 엄마가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오신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후로도 크고 작은 시련이 부모님에게 닥쳐왔고(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지만 부모님의 경우 젊은 시절이 유독 힘드셨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평화로워지셨다) 어두운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하면서 삶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타고난 기질도 예민한데 부정적이기까지 하니 살아가는데 남보다 두 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


비관과 우울의 렌즈를 끼고 보는 세상은 온통 납득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생이 고통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혹한의 날씨에 불편한 몸으로 인도에 누워 적선을 바라는 아저씨나 지하철역 앞 바닥에 앉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세상 일이 부질없게 느껴져서 다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모순 속에서 붕 뜬 것 같은 20~30대를 보내고 마흔을 맞이했다. 그래도 젊은 시절보다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여서 별다른 마흔 앓이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이번엔 남편이 번아웃이 와서 직장을 관두고 쉬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장례식장이 부족해 시신을 냉동트럭 안에 보관해야 했던 뉴욕의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이토록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만큼 절실히 느낀 때가 또 있었을까.


지구촌을 휩쓸었던 죽음의 공포가 잠잠해지고 일상은 어느 정도 평온를 되찾은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나이에 서 있다. 40 후반이 되니 부고 소식이 잇따르면서 경사보다는 애사에 많이 불려 가는 인생의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몇 년 전까지는 왜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태어남을 선택한 적이 없는데 세상에 던져졌고 여기 이렇게 존재하니 어떻게든 이 생을 살아내야 해서 꾸역꾸역 살고는 있는데 살면 살수록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질 순간이 다가오고 결국 나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이 덧없고 허무한 여정을 왜 계속해나가야 하는지 절실히 답을 찾고 싶었다. 자식이 있으면 삶을 살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되겠지만 아이가 없는 나는 유혹에 흔들리기가 더 쉬웠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게 마흔 앓이였나 싶다. 직장을 관둔 시기에 하필이면 코로나가 창궐해서 고립감에 빠졌고, 극복한 줄 알았던 유년의 상처는 망령처럼 살아나 나를 덮친 데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마음의 폭풍이 더 거세졌던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감정의 동요는 다행히도 근엔 잦아들었다.


현재의 순간이 당신이 가진 전부라는 걸 깊이 깨달으세요.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 53p,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 중에서


손쓸 수도 없는 과거와 미래의 일들로 허무감에 빠져있느라 정작 내가 가진 전부를 그냥 허비하고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때마침 남편이 건넨 한 마디가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인생에 꼭 의미가 있어야 하나? 고양이, 돌멩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냥 존재하니까 살아가면 되는 거지. 의미를 찾지 말고 재미를 찾아봐."


삶에 꼭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그 말이 두고두고 생각났다. 책을 별로 읽지도 않는 아저씨가 가끔 이렇게 현자 같은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지금도 우리 곁엔 수많은 죽음이 함께 하고 있고 언젠가는 나와 가족들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생의 시계를 멈추지 않게 할 방법은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일상을 건강하게 영위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경험의 폭을 넓히며 매일매일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노력하는 일 말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무엇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느냐에 달려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어차피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내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의 정도가 달라지는 거겠지.


오늘도 눈을 뜨고 하루를 연다. 매일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오늘도 새로운 삶이 주어졌구나.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지.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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