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아파트가 주는 편안함
궁합이 맞는 집이란
항상 젊을 줄 알았던 내가 어느새 사십 대가 되었다.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들면 비슷비슷하게 살던 친구 간에도 자산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대출을 받거나 전세를 끼고 과감하게 부동산 투자를 한 친구들은 크게 부를 일구었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내 경우는 짐작하다시피 후자이다. 모험을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안전한 선택만 해 온 결과지만 후회는 없다. 우리 부부에게는 돈보다는 마음 편한 게 최고이다.
현재 나는 15년 차에 접어드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2007년에 태어나 이제 여기저기 손 볼 곳이 생겨나는 구축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를 원해서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꽤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2008년 결혼 이후 전세와 자가를 거쳐 다양한 집에서 살아본 결과, 이 정도면 100점 만점에 85점은 줄 수 있다. 신축에는 없는 구축만의 편안함과 포근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집에 이사 오기 전, 갓 분양한 신축 아파트에 살았었다. 결혼 이후 6년간의 전세살이를 청산하고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이었다. 입주 후 얼마간은 TV에서 자주 보던 브랜드의 아파트가 내 집이라는 사실에 뿌듯했고, 잘 닦여진 산책로와 부대시설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살다 보니 몸이 자주 아팠다. 남편은 이유 모를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을 했고, 나 역시 각종 피부질환과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새집증후군으로 인한 증상 같았다. 입주 전 이틀간 베이크 아웃을 했고, 입주청소 업체에게 피톤치드 시공도 맡겼지만 충분치 않았나 보다. 게다가 주변에 산이 없어서 공기질이 그리 좋지 않았다. 계속 몸이 아프다 보니 집에 정이 붙지 않았다. 간신히 2년 정도 버티며 살고 있을 무렵, 뉴스에서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떠들어댔다. 불안해서 근처 부동산에 물어보니 내 우려감에 동조하며 얼른 집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집을 팔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는 잘 한 선택이었고, 재테크를 면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집을 판 뒤로 집값이 몇 억 이상 올라서 좌절감에 시달렸다. 급한 마음에 당시에 전세로 살고 있던 이 집을 덜컥 샀다. 동향이라 아침에만 해가 들고 세대수도 애매한 중형 단지라 성에 안 차는 부분이 있었지만, 치솟는 집값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집을 산 이후 어느 정도 시세 차익을 보기는 했지만, 뉴스에 나오는 집값을 보면 딴 세상 얘기 같았다. 그럴 때마다 전에 팔았던 신축 아파트가 떠올라 속이 쓰렸다.
하지만 살다 보니 점점 이 낡은 집에 정이 들었다. 머리를 띵하게 하는 새집 냄새도 안 나고,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질환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잠도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역시 돈보다는 삶의 질이 우선이다.
이 집에 대해 좀 더 자랑해보자면, 발코니가 무척 넓다. 확장을 하지 않은 기본형이라 거실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발코니가 달려 있는데 폭이 2미터 가까이 된다. 공간이 넓다 보니 팔걸이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 두고 아침나절의 햇살을 즐기며 독서를 하기에도 좋다. 또한 꽤 큰 화단이 있어서 상추나 대파를 심어 먹을 수도 있다. 실내 공간도 신축에 비해 더 넓어서 답답하지 않다. 요즘과 달리 집을 지을 때 공간에 인심을 후하게 쓴 것 같다. 그리고 발코니가 완충 작용을 해서 결로현상이 없고, 평수에 비해 난방비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근처에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늘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사시사철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봄에는 각양각색의 꽃이 만개하여 눈을 즐겁게 하고, 여름에는 장맛비에 촉촉이 젖은 초목이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며, 가을에는 노랗고 빨갛게 타오르는 산이 황홀감을 안겨주고, 겨울에는 하얗게 눈 덮인 산이 크리스마스 카드 속 풍경을 선사한다.
주변에서 집값이 치솟아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돈보다는 집과의 궁합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집에 이사 오면서 금전적인 손해를 봤지만, 대신 성당이 가까이 있어서 종교를 갖게 되었다. 쉽게 불안해지던 마음이 전보다 편안해졌고, 가족 모두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 비록 새 집은 아니지만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고, 몇 년마다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크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 이 단순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행복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