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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Jul 10. 2021

실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다. 바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아무리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아니 할머니라고 해도 가능하면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은 남들과 달리 좌절이나 굴곡 따위는 없는 탄탄대로였으면 하는 이기적인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실패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으므로, 좌절감에 짓눌리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한 번쯤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복자에게>는 최근 문단에서 주목받는 김금희 작가의 작품이다. 책은 섬세한 문체로 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실패를 그리고 있다. 지나치게 인물의 감정에 매몰되지도 않고, 그들의 삶을 애달파하지도 않는다. 그저 삶의 풍랑 속에서 넘어졌다가 일어나, 계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담담한 시선 속에 인물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응원이 느껴진다.


주인공인 이영초롱은 열세 살에 부모의 사업실패로 제주의 부속 섬인 고고리 섬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고모에게 맡겨진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섬에서 우울해하다가 우연히 또래 친구인 복자를 만나 단짝이 된다. 하지만 어른들의 갈등에 휘말려 복자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 서울로 다시 전학을 가면서 결국 관계가 끊어진다. 세월이 흘러 판사가 된 주인공은 현실 속에서 개개인의 세세한 사연까지 고려하기 어려운 법 집행의 한계를 느끼고 회의감과 분노를 참지 못해 법정에서 욕설을 쏟아내고 만다. 이로 인해 제주로 좌천되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 복자를 다시 만난다. 그런데 그녀는 간호사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 아이를 유산하고 의료원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주인공과 복자 외에도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양한 삶의 굴곡을 겪으며 살아간다. 실제로 작가는 취재를 위해 제주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섬 해녀들의 강인한 삶의 자세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혹독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꿋꿋이 살아간다. 그렇게 굳세게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복자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녀는 의료원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불가능해 보였던 소송에서 승소한다. 앞으로 인생에 또 어떤 난관이 닥칠지 모르지만, 늘 그렇듯이 그녀는 실패를 보듬으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삶이 참 녹록지 않다. 어릴 때 꿈꾸었던 멋진 삶은 온데간데없고 주 5일, 하루 8시간씩(때로는 그 이상) 자본에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자 역시 시간을 담보로 잡히긴 마찬가지다. 잠깐의 주말과 휴가로 원기를 충전하고 다시 자본의 노예가 되어 돈을 벌어야 하는 삶. 멀쩡한 사회인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   과정에서 실패까지 경험하게 되면 멘털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스트레스와 더불어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만만치 않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처럼 어디에나 일정 비율의 성격파탄자들이 존재하고,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으므로, 겉으로라도 그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비단 직장동료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은 발생한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치유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힘들 때 말없이 안아줄 수 있는 가족, 울적할 때 술 한잔 기울이며 다독여줄 수 있는 친구 등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팍팍한 세상에서 사람의 온기로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짐을 반복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 우리도 갈등으로 인해 반목하다가 다시 포용하며 다가서를 반복한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 역시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실패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잠시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털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실패를 겪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겪어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이자, 더 나은 인생으로 거듭나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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