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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May 25. 2021

톨스토이 고백록 - 이성에서 신앙으로의 여정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이다. 톨스토이가 살던 19세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 책은 전 시대를 아우르는 인류 공통의 질문에 대해 그가 찾아낸 답을 담고 있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레프 톨스토이는 평생을 부유하게 살았다. 결핍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그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 했을까. 거기에서 나의 궁금증은 시작되었다.


2살과 9살에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톨스토이는 어릴 때 죽음에 눈뜬 후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신앙인들의 표리 부동한 모습에 실망하여 종교를 멀리했다. 그 이후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다른 이들보다 더 유명하고 부유하며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방탕한 청년시절을 보내던 그는 1851년 군에 입대하여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전역 후 자신의 영지로 돌아온 그는 글을 쓰고 농민학교에서 농노를 가르치며 지식인의 삶을 살았지만, 정작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선생질'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결혼 이후에는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1869년 <전쟁과 평화>, 1877년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문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생의 절정을 맞이하던 51세에 극심한 정신적 고뇌와 방황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집필한 책이 <고백록>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끊임없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지만 철학, 과학 그 어떤 학문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이성에 근거하면 삶은 악하고 무의미한 것이므로 끝내버려야 한다. 인간은 죽음의 용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모른 채 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채 현실의  꿀(돈, 명예, 사랑 등)을 빨며 살아가지만 그는 인생의 허무함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자살을 감행하기 전 그는 어떻게 해서든 한가닥 희망의 끈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어떻게 끊임없이 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학문 연구에서 답을 찾지 못하자 주변인에게 눈을 돌렸고, 결국 상류층이 아닌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의 삶에서 그 해답을 발견했다. 부자들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나태와 불만족으로 삶을 허비하는 반면, 빈자들은 성실하게 땀 흘려 노동하고 삶에 비교적 만족하며 살아갔다. 그들은 힘든 노동과 질병, 죽음 등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순응하고 받아들였.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착하게 산 자는 복을 받게 되므로 신앙은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그에게는 신앙-과거에 그가 비이성적이라 여겼던- 말고는 답이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톨스토이는 18세 때 닫아버렸던 신앙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연다.


인간은 절박할 때 신을 찾게 된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역경이 찾아올 때 종교로 귀의하는 많은 사람을 보아왔다. 나 역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절대자를 찾으며 엎드려 간구한 적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당대 최고 지성으로 불리던 한 인간이 결국은 신앙으로 회귀하며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에 대해 고백한 내용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평생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인간이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할 때, 나는 그런 인간은 행복하고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낍니다. p.124


내 삶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즉 이 의지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갔습니다...(중략)  달리 말하면, 나는 하느님과 도덕적 완전, 그리고 삶에 의미를 부여했던 저 전통에 대한 신앙으로 돌아갔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에는 이 모든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반면에, 지금은 그것 없이는 내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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