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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Sep 05. 2022

잠들지 못하는 밤에

불면의 밤을 수놓는 생각들


어두운 밤, 외롭지 않게 짝꿍이라도 되어주듯 환하게 불 밝히고 있던 앞집의 불빛마저 꺼지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여름의 끝자락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 덕분에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견딜만하다. 옆에선 남편이 나직하게 코를 골고 있고 발코니 우수관에선 투둑 투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밤이 깊을수록 주변의 소리는 또렷해지고 머리는 점점 더 맑아진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오늘 밤 잠들기는 글렀구나, 라는 생각으로 살짝 몸을 뒤척인 순간 잠결에도 손을 뻗어 내 등을 토닥이는 남편. 외롭고 힘든 유년시절에 대한 보상일까. 이렇게 나를 아껴주는 다정한 사람의 존재가 고마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힘들고 기쁘고 우울하고 행복했던 그간의 삶의 장면들이 빠르게 재생되어 지나가고, 내가 숨 쉬고 있는 지금, 무탈하고 평범한 지금이 소중해서 눈가가 촉촉해진다. 현재가 영원하면 좋으련만.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 이 순간도 과거가 되어 회상하는 때가 오겠지.




갑자기 생각의 방향이 빠르게 바뀐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남편이 떠나고 나 혼자 남겨진다면...'


노년에 닥칠지도 모를 외로움을 떠올리기 싫어 다른 생각을 하려 하지만 뇌는 벌어질지 안 벌어질지 모를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일을 이미 기정사실로 간주한 모양이다. 갑자기 좀 전의 행복감은 온데간데없고 걱정과 두려움이 스멀스멀 찾아온다.


가끔씩 깊은 밤이면 '왜 태어나서 살아야 하나'라는 존재론적인 고민에 휩싸이고, 혼자 남겨질지도 모를 노년과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며 두려워한다. 차라리 죽음 이후는 두렵지 않다. 우주를 이루던 원소에서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노년의 고독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승과 저승의 문턱에서 온전히 혼자 겪어내야 하는 고통이 두려울 뿐이다. 내 의지로 삶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깊은 밤에 잠시 행복감을 느끼다가 이 행복이 사라질게 두려워 고민하는 나란 존재는 얼마나 무력한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닥치는 일에 그때그때 대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 같다. 언젠가는 끝날걸 알기에 더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마음속에 꼭꼭 눌러 봉인하며 눈을 감는다.





*사진출처:  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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