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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Sep 16. 2019

파리-니스 8박 11일 프롤로그

재킷을 코끝까지 끌어올리니, 이름 모를 향수 냄새가 났다

드문드문 노란 불빛이 사람들 얼굴에 커다랗게 떨어졌다. 역광의 새벽, 광저우 공항은 어둠을 더해 갔다. 여기저기에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귀에 박히는 저 말들. 알지 못하는 그녀의 인생 일부분을 감지하게 만드는 깊은 언어들. 사람의 얼굴과 성정을 감지하게 만드는, 동그랗거나 쇳소리처럼 떨어지는 저- 저 말들. 나는 그동안 저 말을 듣지 않아서 좋았고, 또 듣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파리에서의 날들은 들리지 않는 소음의 나날이었다.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 소음들. 나 역시 그곳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는 소음을 갖고 그곳에 도착했다. 




인천으로 환승하는 광저우 공항에 도착한 건 새벽 네시 반쯤으로, 10시간 만에 굽은 다리를 펴고 등을 바닥에 뉘었다. 파리를 떠날 때는 몰랐는데 함께 출발했던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직항을 탄 것이었다. 다시 비행기를 탈 일이 없이 곧바로 어두운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 다시 네 시간을 기다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와 엄청난 차였다. 다음에는 나도...라고 생각하며 재킷을 코까지 덮으니, 이름 모를 향수 냄새가 났다. 내 목을 덮었던 자리에서 향수라니.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좀 전까지의 파리에서였을 것이다. 


니스의 해안




그곳에서는 향기가 없는 사람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길을 지나다니는 다 큰 성인이라면 누구나 냄새가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사람이 말을 걸기 전에, 눈을 마주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이 거기 있다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가장 먼 곳에서 자신을 대략 소개하는 신호였으므로 냄새가 없는 사람은 눈으로 혹은 말로 하는 인사들 중 하나를 생략하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으리라는 가정이 가능하다면. 그건 인기척 없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과 같았고, 좀 더 말하자면 어느 대화에 인사 없이 들어와 말을 건네기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프랑스에서 향수가 어떤 이유에서 발달되었는지 그 역사와는 이제 상관없이,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인사법의 하나로 보였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책 <향수>의 극찬받는 상상력은 그곳의 문화를 알지 못함에서 나오는 찬사일지도 몰랐다. 인상을 풍기며 걸어오는 사람들. 이제는 내 옷에도 묻어났다. 내 것이 아니지만 거리와 마켓에서, 매장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부대꼈을 어떤 사람들에게서 온 냄새였다. 




언어 없는 여행자로 입과 귀도 없이 마침내 내게는 향기도 없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보도에 떨어져 걷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보는 것과 만지는 것, 걷고 뛰고, 문을 여는 것들로 여행은 이루어졌다. 그곳에는 내가 이룰 수 있는 서로가 없었고, 속할 수 있는 우리도 없었는데 심지어 나조차도 그랬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주변의 풍경에 빠져 나를 잊었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


광저우 공항


잠시 후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는 아침이 왔다.

새벽에 공항을 빠져나간 사람들은 이 아침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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