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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Mar 24. 2020

짧은 머리와 사랑의 태도

사랑이 곤란한 당신에게

어디서 본 귀엽고 소란스러운 것들은 가벼워 잘 날아가 버린다.  노트를 열어 물어보고 싶게 있었다.




너를 써도 될까. 네가 없지만 그렇게 물어보고 싶다. 질문은 잠을 뒤척이듯 바꿀 수 있다. 내가 참을 수 있는 타인이 있을까. '사랑할 수 있는' 내가 있을까.


당신은 어디에라도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신겨져 있는 양말과 그렇지 않은 양말. 혹은 사지 어디에라도 걸치게 되는 것들처럼 많을테다. 언젠가 당신의 끝에 걸렸던 물건들의 가짓 수처럼. 그래서 그 수를 말하는 것보다 그걸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존재 여부를 뭍는 것이 순서일 터였다. 는 그 마음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낀다. 머리를 짧게 자른 이후 사랑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르더라도 언제나 선을 지켰었던 머리였다. 묶을 수 있을만큼 잘라주세요. 머리끈으로 묶을 수 있을만큼의 길이를 늘 남겨두었던 머리. 그 선 이후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건너가게 된 건 아주 평범한 하루에서였다.


버스의 가장 뒷좌석에 앉아 덜컹이는 바닥에 맞춰 흔들리는 사람들의 키를 봤다. 그 중에 어떤 여자, 그녀는 머리가 너무 길어 또아리를 트고 위로 올렸다. 그래서 구렛나루와 깡뚱하게 올려진 뒷목이 잘 보였는데 그게 그녀 옆의 남자와 비슷한 옆모습을 연출했다.


당장에라도 그 옆의 남자의 머리를 해도 그녀는 그녀처럼 예뻤다. 사람이 변하는 일은 없다. 저 머리는 여자에게 너무 무겁고, 장식같구나. 그 옆의 간단머리의 남자는 참 대수롭지 않 자신의 모습을 별 꾸밈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머리의 선을 넘자 가벼워졌다. 비로소 의지가 생긴 것 같았다. 누가 정해주지 않았지만 무언의 목소리가 늘 말해왔던 길이를 넘어버리자 그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내 머리는 어떤 남자보다는 짧고, 어떤 남자보다는 길다. 입는 옷도 달라졌다. 나는 그간 나를 보여쥐기위해 참 부단했구나.


머리가 짧아지면서 예전이 내가 아니게 되었고 보다 분명히 말해 예전에 '여자'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을 다시 연출할 수 없었다. 긴 머리를 버린 이상, 다시 연기할 수 없었다. 리고 성급히 어떤 형태로 사랑을 만날 것인지 생각한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사랑하기란 이제껏 배워본적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사랑이 곤란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위해 이 얘길 쓴다. 당신을 찾아 헤매지 말고 나를 찾아 헤매자. 그렇다면 어디 다녀오지 않더라도 오직 이 곳에서의 고통만으로도 글을 쓰게 되는 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너를 써도 될까. 너도 없이 묻는 사랑의 말을 중얼거리지 않고, 어디를 다녀와서 지쳐버린 일기의 부피를 덧대기 전에 내가 써야 할 진짜 일기의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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