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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ul 22. 2020

나는 그의 자랑이 듣고 싶었다

그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름이 갔다. 물기가 빠진 바람은 한 바퀴가 지나야 다시 채워진다. 앞으로 더 건조해질 것이고 그걸로 가을이 된다. 한 번 바뀐 바람은 다시 바뀌지 않는다. 기미없이 사그라드는 여름을 피부로 알고, 조용히 섭섭해 한다. 그 밖에도 나는 몇 가지가 아쉬워 잠을 못자고 있다. 태극당에서 가져온 스티커를 만지작거리며. 반짝이고 예쁘지만 특별히 어디에 붙일 곳은 없는 스티커를 펼쳤다 모았다 하며. 좀 전에 존경했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주변을 조용히 하느라 선풍기를 껐고, 여름이 갔다고 생각되는 바람은 아직 더워서 땀을 흘리면서 전화를 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맞아 흐를 때 다시 선풍기를 켰다. 전화 한지가  십수년이 지난 것 같았다. 카스테라, 케익, 몽블랑. 흩어지고 다시 모아지는 여러 개의 스티커. 나는 그의 자랑이 듣고 싶었다. 


그가 자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논문을 물어보았고, 논문은 과정일 뿐, 새로운 연구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금새 수그러들었지만, 역시 그는 건실한 사람이다는 결론을 다시금 확인한다. 얼마 전에 쓴 글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고, 그것은 정말 흥미로웠지만 내게는 흥미롭다는 표현 외에는 더 물어볼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집 얘기를 하다가 처제의 집이 서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결과 나는 되도 않게, 서울에 오시면 보자는, 그런 얘길 했다. 그렇게 만나질 일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의례적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기억나는지. 그는 내게 국자를 알려준 사람이다. 


어떤 시대의 국자는 제사용기로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남겨진 국자는 몇 개 없었고, 그 국자를 모아서 연구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온통 주거지 생각으로만 가득해서, 대체로 주거지에 몇 개의 기둥을 박았느냐, 그 주공의 거리가 어떤지, 말미암은 구조만이 관심사였다. 그러니까 유물에 대한 연구는 좀 작은 것으로 생각했던 때였다. 국자요...라고 대답했고, 국자의 숫자를 찾아보았고, 선행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 여러가지 이유로 그만 두게 되었다. 아무래도 국자는 어렵겠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국자라니. 주제가 쉽지 않을 것 같지. 갯수도 별로 없고. 그는 그냥 아이템중 하나였을 뿐이며,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는 첨언을 했으며 그러면 다른 좋은 소재를 찾아보자는 말미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건 그가 주거지를 파고 있는 내게 출구를 마련해 주는 거였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구를 골몰하는 것보다 유물을 생각하는 편이 더 쉽고, 국자라는 실물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지만 문헌을 뒤지고, 그러면 어떨까 하는, 그로서는 지금 하고 있는 부분이 다소 어려우니, 이 편은 어떤지, 물꼬를 트는 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글을 봐주었지만 아니 선행연구 검토와 앞으로 검토해야 할 보고서 리스트와 방법론을 봐주었지만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얼마나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 가늠해 보다가, 막상 그와 함께 학교를 다녔던 시절이 고작 1년이었고, 그 1년 중에서도 몇 과목에만 한했고, 그 몇 과목에서도 절반에 그는 수업을 나오지 않았다는 걸 기억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건강을 때때로 물어봐 준 사람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공부를 하려면, 건강해야 해. 라는 요지였다. 나는 그 확신에 찬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어렴풋하게 공부와 건강 너머에 자신만이 꼭 할 수있는 일생의 과업이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므로 건강해야한다, 라는 말은 그저 너를 염려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네가 할일이 있다. 라는 말로도 들렸다. 나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너도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주는 것이 감사했다.


우리가 함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많지 않았던 게 아니라 거의 없었고, 거의 유일하게 교집합으로 겹치는 이는 나와 연락이 오래전에 끊어졌으며, 얼마 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외 출장중이라서 가지 못했어. 라는 말에 나는 그 해외 출장의 정체를 궁금해했어야 했지만 그냥 혼자서 궁금하고 더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말할 수있는 포인트에 해외출장이 자신의 능력을 말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인지, 아니면 일의 경과중에 한 부분이었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그걸 묻는 게 스트레스일 것이다. 전자라면 당연히 좋았겠지만, 나는 운에 반이나 기대야 하는 도박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전화는 얼추 끊어졌다. 잘 지내고.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안녕히 계시라고 말했다. 안녕히. 그리고 그가 다닌다는 회사를 검색해보았다. 내가 잘 알거라고 했지만 모르는 곳이었다. 국가기관인지, 아닌지도 언뜻봐서 알 수 없었다. 여러 사업단 밑에 이름이 랭크되어 있었다. 이제 내 이름을 알려줄 차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 나도 나의 일은 되었으니, 나는 이 정도로 괜찮으니 너의 자랑이 듣고 싶어서 전화하고 싶은 이가 몇몇 있다. 입장을 놓고 생각하니 이해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런 전화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지금쯤 내가 준비되었다고 믿고 나의 자랑을 궁금해하고 염려하는 이에게 전화가 왔었다. 


어제 통화에서 내가 물어볼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2017년 8월 14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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