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다니는 여행이 좋았다. 그래서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무던히 말해 왔다.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 그게 여행이라고, 조금은 멋부리며 말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은 바뀌었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연애를 하고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여섯 살에 이르기까지 나의 여행은 둘 또는 그 이상과 함께였다. 아름다운 숲길을 걷고 푸른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좀 다른 여행이어서, 나는 제대로 된 여행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삶이 조금은 쓸쓸하다 여기며 살기도 했을 것이다.
설을 전후로 나는 제주를, 아내는 태국을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나름 선진 부부(?)의 모습 아니냐고 웃으며 맥주잔을 부딪혔다.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 속에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꼭 가 보고 싶은 곳만 몇 군데 정해 놓고 출발하는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설렘 속에 여행 시작. 그런데, 자꾸 몸과 마음이 이상 신호를 보낸다.
혼자가 더없이 낯설고 어색한 일이 되어 버린 것.
우도의 일몰은 아름다웠고, 이중섭 공원에선 봄이 오는 향기를 맡았으며, 거센 바람 속에 오른 용눈이 오름의 새벽은 벅찬 감동이었다. 혼자여서 좋은데 아니 좋아야 하는데 한없이 허전하기만 하다. 이건 미안함과는 다른 느낌. 꼭 여기를 가족과 다시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굳이 혼자 다시 이곳에 올 이유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발목이 묶였다. 그렇게 이제 더는 '혼자여서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게 아쉬울 일이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누구나 '그때 그곳'에서 '지금 이곳'로 걸어 왔다. 생각만 해도 발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오래 혼자 걸었던 '그때 그곳'의 기억이 너무나 찬란해서, 이리도 오래 마법에 걸려 있었던 것.
그래서 이젠 바꾸어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한 시절이 있는 것'이라고, 다행히 나는 그 시절을 잘 살아낸 것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