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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Apr 28. 2020

숨어 있는 것들

 <숨어 있는 것들>에 숨어 있는 이야기

늦은 입대를 앞둔 백수였던 나는 후배 K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하지만 오랜 시간 술안주가 될 일을 하나 시작했다. 'violet tears'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의 그룹을 만들어, 건반도 다룰 줄 모르는 주제에 nwc라는 프로그램으로 더듬더듬 작곡을 했다. 지금 보니 손발이 소멸될 것 같은 가사도 쓰고, K의 집과 주말의 학생회실까지 이용해 가며 보컬도 녹음했으며, CD로 구워 주변 사람들에게 강매까지 했다. 발매(?) 무렵 서태지가 컴백하는 바람에 50장을 밑도는 저조한 판매량을 올렸으나, 암튼 우리는 수익금으로 고기를 사 먹고 노래방에서 남의 노래들로 관객 없는 콘서트를 한 후 잠정 해체했다. 16~7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을 전후하여 작곡가 동생을 알게 되어 몇 곡의 가사를 써 나름 음악저작권 협회 회원이 되었지만 좋은 추억일 뿐,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이상으로 음악에 가까워질 일이 없었다. (지금도 한 달에 100원 이하의 저작권료가 들어온다) 늦은 제대 후 교원 임용을 준비하다 두어 차례 미끄러지고 나니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고, 그렇게 시작한 학원 선생 노릇이 이제 십여 년 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그 노래들이 생각났다. 차마 원곡은 어디에 올리기 민망하지만, 20대 한 시절 오롯한 열정이 담긴 멜로디들.  


피아노 치는 후배에게 혹시 이 곡들을 피아노 연주곡들로 쳐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원곡을 여러 번 듣게 해야 하는 민폐를 끼쳐야 하니 민망함 그 자체였으나, 후배는 극강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곡으로 바꾸어 보내주었다. 도대체가 내가 만든 노래 같지가 않아서 어색하긴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 욕심을 내어 음악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게 유통 신청을 했고 승인이 났다. 그 <<숨어 있는 것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여섯 살 자장가>는 nwc로 제일 처음 만든 곡이다. 처음 제목도 <자장가>였으나, 앨범 낼 때(?)는 다른 제목이었다. 차마 그 엽기적인 제목을 쓸 수는 없었고, 여섯 살 딸내미 변망고 씨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제목을 바꾸었다. <11월>은 윤종신, <눈사람>은 성시경에게 주고야 말겠다며 만들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지금이면 생각도 못할 똘끼로 충만했던 시절은 이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이 노래들을 그 시절의 나에게 바친다.


음악을 하자고 꼬셔 내 인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준 K, 그리고 원곡을 여러 차례 들어야 하는 수고를 무릅쓰고 대수술을 성공리에 집행해 준 오랜 친구 해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를 전한다. 변변치 못한 노래를 계속 들었고, 들어야 할 망고가족과 친구들에겐 감사와 위로를 함께 전하고 싶다. 민망하지만 <눈사람>에는 이런 가사가 있었다. 계절은 맞지 않지만 지금 내 마음과는 딱 맞아서 덧붙인다.


"어느새 하얀 눈이 와요, 그래도 따뜻한 겨울이죠. 그대의 눈에도 보이나요. 새하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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